1949년 1월 6일 눈쌓인 거친 오름
바람은 칼처럼 매서웠다.
이 땅의 일본군이 떠나고
이 땅에 다시 미군이 들어와도
먹고사는 일이 더 힘들어
산 아래서 무슨 일이 났는지 몰랐는데
그날은 총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총소리가 가까워 왔다.
군경 토벌대의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 왔다.
애어미는 겁에 질려
오름을 향해 뛰었다.
두살난 어린 아이를 안고
맨발로 눈길을 미끄러지며 뛴들
얼마나 멀리 도망갈 수 있었으랴.
고요한 겨울 오름 위로
가슴팍을 조준한 총소리는 참 간결도 하다.
탕.....
탕.....
하얀 눈위
얼어버린 핏자국
이명박과 뉴라이트는 참 간결도 하다.
산짐승처럼 공포에 쫓겨 내달리던 제주사람들의 이 핏자국을
그들은 간결하게 '폭도의 것'이라 부른다.
제노사이드....
유대인 출신 법학자 렘킨은
나찌 독일이 행한 대량 인종 학살에 대해 '제노사이드'라 명명했다 한다.
인종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제노스와
살인이라는 뜻의 라틴어 사이드를 합성하여
일반 전쟁 범죄와 반인도 범죄를 구분해 놓은 것이다.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은
해방전후기의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서로의 이해에 의해
제주도에서의 대량인종학살을 서슴지 않았다.
태평양 전쟁 당시
제주도민을 인질로 삼아
마지막 저항을 준비하던
일본제국주의 군인들이 물러나면서
죽음의 공포에서 갓 벗어난
제주도민들을 향해
이제는 새로운 권력이 총부리를 겨누며 다가왔다.
그리고 6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날의 제주도민을 폭도라 규정하며
또다른 학살을 감행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백비에는
그날의 억울한 비명조차 새기지 못하였는데
4.3은 2008년에 들어 또다시 왜곡되어 간다.
4.3 발발
60주년을 맞아
지난 4월 3일 개관한 제주 4.3 평화 기념관
군경의 토벌로
피비린내 진동하던 봉개동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날 이곳에서의 기념식은
오랫동안 제주사람들 가슴 속을 짓눌러온
그 징한 불안감이 다시 되살아나는듯
묘한 긴장감으로 뒤덮혀 있었다.
짐승처럼 토벌되어
허허벌판에 버려진 제주사람들의 시신은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들만 살찌우게 했는데
저승길에 수의 한 벌 못해 입은 그 사람들을
또다시 왜곡하고 탄압하려는
새 정부의 움직임에
또다른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하는 오늘이다.
그들을 폭도라 부르는
너희들은
진정 무엇이더냐?
역사 속에서 스러져간
저 망자들의 비명이
훈장을 품에 안고 자는
너희들의 단잠을 방해하였던 탓이더냐?
암울하다.
다랑쉬굴에서 발견된 시신들
저 시신이 누구의 것이었든
우리는 그날의 아픔 앞에서
다시는 이 땅에 이런 고통이 없기를
이념으로 인하여 서로 죽고 죽이는 악행은 더이상 없기를
바라고 바라야 한다.
그런데도
다랑쉬굴의 유해들은
안식을 찾기는 커녕
정부의 강권으로 한 줌 재가 되어 바다에 뿌려져야 했다.
집단학살로
멸치젓처럼 엉겨붙은 까닭에
제 부모 제 형제의 시신을 확인할 길없어
백여 조상에 한 후손이란 이름으로 세워졌던
백조일손비도
박정희 정권 당시 저처럼 처참하게 부숴지고 말았다.
당시 군경의 소개 작전으로
불태워진 마을의 풍경이다.
퐁낭의 풍경이다.
오름의 풍경이다.
허름한 조선복에 짚신 끌고 다니며
해뜨면 자갈밭 일구다
해지면 돌아와 지게 내려놓고
낭푼 하나에 밥 퍼 놓고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삼촌이랑
보리밥에 맬젖으로 한 끼니 보내고 살다가
이리 갈 줄 알았나
호열자로 죽은 자식을 멍석에 말아
가슴에 묻었던 어미들이지만
총에 맞아 죽는다는 건
생각도 못해봤다.
이곳이
토벌대를 피해
산으로 달아났던 제주사람들의 보금자리
물항아리는
할망이 끼고오고
솥단지는 하르방이 지게에 이고 와
한 겨울을 숨어 지냈다.
무엇 때문에?
아직도 이념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념 때문에
저 시린 자리에서 죽어갔다고
아직도 그리 보는가?
우리 옛사람들의 삶이 그리 사치스러웠다고 생각하는가?
아서라...
보리밭 자갈밭 감저밭에서
햇살보다 더 노랗게 뜬 얼굴로
골갱이질로 한 평생을 보낸
제 어미도 몰라보는 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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