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31 새벽
임실의 성수산 자연 휴양림에 도착한 것은 지난 밤.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견딘다.
성수산 자연 휴양림을 지나 산길을 걸어 들어가면 바로 상이암.
곧장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새벽을 기다리기로 한다.
푸른 새벽, 꿈에서 깬다.
여전히 꿈결같은 새벽, 길을 나선다.
손을 씻은 것뿐인데 걸음이 단정해진다.
얼마나 걸어야 할까 은근히 계산하고 있었는데
예상 밖으로 상이암은 휴양림에서 가까웠다.
슬쩍 아쉬워진다. 걷고 싶은 새벽이었다.
세월을 가늠하기 힘든 고목의 둘레를 천천히 돌아보며 호흡을 조절한다.
느리게 가자.
마음은 아직 산빛에 물들지 못했다.
느리게 가자.
상이암
조선 태조 고황제 어필 삼청동 비각 중건비가
암자 입구에 마중 나와 있다.
어필각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권유로 이곳에서 백일을 기도하였으나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채 시일이 다 되고 말았다.
이에 이성계가 크게 발심하고 삼일을 더 정진하였는데
기도가 끝나는 날 꿈에 아기 동자가 나타가 원하는 소리를 들려 주었고
이후 이곳을 상이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당시 기도를 끝내고 마음의 맑음을 얻고 간 이성계가 새긴 글씨 '삼청동'
그런데 이곳은
도선국사가 이미 '천자를 맞이할 길지로 손색이 없다'고 점찍은 곳으로
후삼국 시기의 왕건 역시 이곳에서 백일 관음기도를 끝내고 못에서 목욕할 때
용이 내려와 몸을 씻어주고 승천하며 '성수만세'라 하였다 한다.
그때 왕건이 그 기쁨을 바위에 '환희암'이라고 새겨 남기기도 했다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찾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왕건과 이성계 이외에도
동네 인사들이 모두 찾아왔었다는 것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토끼는 그저 물 한 모금이면 족한데!
상이암
신라 헌강왕 1년인 875년 도선국사가 도선암으로 창건하고
이후 이성계가 다녀가면서 상이암으로 불려지고 있다.
무량수전
6.25 당시 소실되었고 이후 재건되었다.
왕건의 기도를 바라보고
이성계의 꿈을 바라보았다는 부처님
투명한 여의보주 안에 또 누군가의 무슨 꿈이 비추일까.
나는 내 안의 여의보주를 찾아 잠깐 가부좌를 튼다.
인적도 없는데 촛불이 타고 있다.
새벽 산길로 누군가 먼저 다녀갔나보다.
발소리를 줄여 이리저리 전각을 따라 걷는다.
상이암 부도
원래는 상이암 우측에 있었으나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어필각 뒤로 솟은 바위산으로 올라가 보았다.
푸른 정기가 흐르는 이곳은 언제나 새벽인듯
하루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아침을 시작하기에 좋은 곳
새로운 세상을 열고 싶은 사람에게는
새 길을 딛고 나서기에 좋은 곳.
그런 명당은
언제나 그렇지만
맑은 마음이 있는 바로 그 자리
...
Straight from my heart - Richard Mar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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