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바람이
몰아친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그 바람 속에서도
의연한 것들은 있었습니다.
꾸밈없이
진실한 것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바람에 씻긴 후
이제 마지막 골격만 남았다는
바굼지 오름.
그래서 그런지
바굼지 오름에선
제 옷자락도 붙들 것이 못된다는 듯
거센 바람이 불어댔습니다.
박쥐 형상을 닮았다 하여
혹은
이 오름이 물에 잠겼을 때 바구니만큼만 보였다 해서
바굼지오름이라 전한다는 이곳은
안덕면 사계리와 대정읍 인성리 경계에 걸쳐 있습니다.
바람부는 산의 풍경과는 달리
언제나 저 먼 곳의 풍경은 고즈넉하기만 합니다.
산 아래 보이는 것은 대정항교입니다.
모슬봉도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제주도 오름 중에서
최고 연륜을 지녔다는 바굼지오름.
그곳에서
오름의 골격을 뚫고 들어간
일본군 진지 동굴을 만납니다.
진지동굴 입구입니다.
1945년 3월 12일
결전 7호 작전으로
일본은 제 58군 사령부를 창설하면서
제주도에
본격적인 진지동굴 및 진지 구축을 시작합니다.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해
제주도를 최후의 보루로 삼고
제96사단, 관동군 제111사단, 혼성 제 108사단
그리고 독립속사포 제32대대, 제1특설근무대 등을
속속 제주도에 배치하여
작전을 수행합니다.
이 바굼지 오름의 진지동굴도
그 중 하나입니다.
사진은 진지동굴 좌우에
수직으로 떨어지게끔 설계된 곳입니다.
어둠 속에서 발을 잘못 디디면
동굴 아래로 추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둔 역사의 질곡에서 빠져나와
훠이훠이
오름의 정상에 올랐습니다.
바람으로 돌아가는
산의 마지막 진화를 지켜보는
하늘 가장 가까운 곳에
노란 유채꽃이 한아름 피었습니다.
바람이 거칠게 휘몰아치지만
애써
맑은 얼굴로
걸어온 길을 뒤돌아 봅니다.
멀리 형제섬이 보입니다.
세상의 충돌하는 모든 것들도
이제는 저 다정한 형제들처럼
서로 기대어 평화롭기를
소망합니다.
불가능한 줄 알지만
희망을 버려선 안되기에
소망을 버리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