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봉.. 땅의 끝
기러기는 우주의 끝을 향해 날아간다.
그러나 우주의 끝이 없음을 알기도 전에
날개가 꺾인 채 추락한다.
종달리 지미오름
땅끝마을의 땅끝오름
땅의 시작이라는 한경면 두모리에서 날아올라
이곳에서 걸음을 멈춘 기러기가 '땅끝'이라 이름하였을까.
기러기처럼 허공에 한 점을 찍고 오르기 시작한다.
봄이다.
손을 내밀면 손가락에도 보라빛이 물들 것만 같다.
악수는 삼가고
눈인사만 나눈다.
예전에는 저 지미봉 꼭대기에 봉수대가 설치되어
북서로는 왕가 봉수, 남동으로는 성산 봉수와 교신하였다고 한다.
지미봉 꼭대기에서
봉수터 대신 엉컹퀴와 교신한다.
좁은 정상에는
일요 산상 예배를 보는 교인들이 꽉 들어차서
야호 소리 대신 아멘을 외친다.
정상에서 내려와 옛 길로 가면
굼부리를 볼 수 있다는
산지기 아저씨의 말에
얼른 정상을 포기하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옛길 속의 굼부리는
잡목에 가리워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리운 삼동 열매가 여기저기서 얼굴을 내밀었다.
먼 옛날의 어느 날, 등교 길에
잘 익은 삼동 열매를 몰래 사 먹느라 지각했는데
보라빛으로 물든 혓바닥 때문에
아무 핑계도 대지 못하고
학생부 선배들에게 혼났던 추억이 새롭다.
그 학생부 선배가 다름아닌 '산하나'님
잘 지내시는지...
굼부리에서 나와
바다를 향해 날개를 접는다.
종달 반도 이곳은 옛 염전지대
선조 6년 1573년 제주 목사 강려에 의해 소금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한다.
그러나 질좋은 소금을 얻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위정자에 의해 추진된 사업은
오히려 고통스럽기만 했을 것이다.
제주풍토록(김정, 1521)
가장 우스운 것이 이 땅이 큰 바다로 둘러 쌓였으면서 소금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해와 같이 전염을 얻고자 하나 물을 떠다가 갈아도 소금이 없고
동해와 같이 해염을 얻고자 하나 물이 싱거워서 공은 백배 들고 얻는 바는 매우 적다.
그래서 반드시 진도나 해남 등지에서 사들이는 까닭에 민간에는 소금이 극히 귀하다.
선조실록 4년(1571)
각 포의 수군이 수영에 방물을 납부함에 있어
홍소녹피, 결궁장피 등이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신이 가만히 제주를 보건대
강돈화록은 그 곳 어디서나 산출합니다.
호표시랑이 없으니 녹장은 번성합니다.
그 섬은 대해 조사 중에 있으나 해수가 소금을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그 지방 사람들은 소금을 귀하게 여깁니다.
각 포로 하여금 소금 10두를 봉납케 하여 관에서 제주의 장녹피와 바꾸도록 하면
무릇 양쪽이 다 편할 것입니다.
남사록(김상헌, 1602)
지방인에게 물어보니
무오년 강려가 목사로 된 때부터
해변 노지를 보고 일하는 사람을 시켜 시험케 하는 한편
육지 연해 지방이 소금 삶은 법과 같이 시도케 하였더니
한 가마에서 삶은 것이 겨우 4-5두밖에 안되고 맛이 매우 썼다고 한다.
지금은 전도 7곳에 염분이 있어 관가 공급에 충당할 수 있으나
민간은 이것을 쓸 수 없음으로 모두 육지에서 사다가 쓴다.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진
옛 이야기 저 편으로
말미오름이 보인다.
요즘 '올레 길'이라 하여 각광을 받는 곳이다.
제주 사람인 나는
그들이 말하는 올레 길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우리 집 올래와는 다른 길인가 보다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동그란 눈동자 속에 비친 세상은 끝도 없고 시작도 없다.
기러기는 떨어진 자리에서 다시 날아올라야 한다.
시작하는 그 자리에서
다들 힘껏 날아오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