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광 마을 거린오름
안덕면 동광리 거린오름.
이 거린오름은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 봐도 두 개의 서로 다른 오름처럼 보이지만
남쪽의 너른 들판과 북쪽의 솔숲 오름이 하나의 굼부리를 품은 같은 오름이다.
북쪽의 솔숲 가득한 오름은
북쪽에 있다 하여 북오름이라 따로 불리는데
사실은 이곳 북오름 정상이 거린오름의 주봉이다.
사람의 길이 오름 가까이 있어
호흡을 채 가다듬기도 전에 북오름의 정상에 도착하기 때문에
오히려 실망이 크지만
정상에서 내려 찬찬히 기슭을 따라 걸으면
다시 생각을 고쳐먹게 된다.
철조망을 건너 찾은 거린오름의 남사면
솔숲 북오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여기에 있다.
화산석인 줄 알았는데
오름 가득 소똥의 향연이 펼쳐진다.
어느 하나 서로 같지 않은 소똥의 생김새를 보면서
이렇듯 사는 것도 제 업 따라 각각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남쪽에서 바라본 북오름
한경면 고산리의 수월봉과 당산봉도 손에 잡힐 듯 가까운데
남서쪽 거린오름에서 북오름 사이의 굼부리는 급하게 경사가 져서
방목 중인 소들이 떨어지지 말라고 철책을 둘러놓았다.
오름 안의 작은 굼부리.
제주 4.3의 와중에 피투성이가 되었던 동광 마을의 오름이어서 그런지
바라보는 시각은 모든 것에서 조심스럽다.
누가 이곳에서 총을 겨누었을까.
일제강점기의 일본군, 혹은 4.3 당시 누구?
그가 누구였든 무거운 총신을 웅켜잡고 잠들어 버릴 것만 같은 곳.
표적을 다시 살피면
총구는 산방산을 조준하고 있다.
맑은 햇살 아래서도 홀로 운무를 피워올리는 한라산
시선을 안으로 돌리면
전봇대를 따라 흐르는 동광 마을 안길 끝에
4.3 당시 군인들에게 학살되어 시체도 찾을 수 없는 이들이 헛묘 속에 묻혀있다.
이곳에서 4.3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1949년 겨울 어느날
고무신을 질질 끌며 저기 저 한라산으로 피난가던 마을 사람들은
눈길 위에 새겨진 발자국 때문에
아주 쉽게 이승만의 군인들에 의해 사냥되었다.
표적을 당기면 병악
표적을 조금 돌리면 멀리 조근대비오름.
거린 너머 북오름 너머 원물오름
창천 너머 군산
서광리 방면의 남송이 오름
이리저리 표적을 돌리며
거린 오름의 풀밭 위에서 한나절의 햇살과 함께 한다.
이 산에서 저 산을 그리는 시름 속에서도 한가한 졸음이 밀려온다.
산 위에서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하니
지나는 바람이 한 마디 한다.
사실 모든 게 꿈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