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아리
안덕면 상천리 서영아리
영아리로 가는 길
오름 입구의 맑은 물에
얼굴을 먼저 비춰본다.
영아리로 오를 준비는
그렇게 다 되었다.
행정구역상 상천리에 속하지만
광평리에서 더 가까운 서영아리
오름이 품은 이 계곡은
흘러흘러 창고천과 안덕천으로 향한다.
향기가 짙은 산이다.
가파른 등성이는 힘들지만
봄꽃과 눈 한 번 맞추고 나면
고통은 과거가 된다.
오름의 향기에 익숙해질 즈음 마주치는 영아리의 습지
제주 4.3 당시
이 영아리로 숨어 들었던 마을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하기도 했던 이곳
어둡고 깊은 속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듯 물결이 파르르 떤다.
습지에도 봄이 올라오고 있다.
1948년 4월 3일
봄을 빼앗겼던 그 암흑의 계절에도
피었을 연두, 연두빛
서영아리가 가까운
이곳 광평 마을은
제주 4.3 당시 한림, 대정, 안덕 주민들이
한라산으로 숨어드는 길목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가 이 서영아리로 숨어들었다.
고통스런 그 날의 흔적을
이제 남은 이들은
'평화'의 상징으로 되새기려 안간힘이다.
바위틈의 작은 궤
허리를 펴기에도 어려운 이 공간에
누군가 오래 지냈던듯
작은 돌들이 가지런히 모여 있다.
1948년 5월 10일 남한 단독 선거를 앞두고
미군 통제하의 강압 투표를 피해
산으로 올라온 사람들은
선거날만 피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미 몰아닥친 광풍 앞에서
그들은 바위 틈 빨갱이로 낙인찍히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다.
굼부리는 깊고
마을은 멀다.
바위 틈마다에는 진달래
머리에 진달래를 이고
바위 틈에 숨어 있다가
목을 축이러 습지로 내려간다.
오늘도 탐관오리의 술잔에는
탐욕스런 향기의 술이 흘러 넘치는데
누군가는 또 겨우 목을 축이며 살아간다.
갑자기 굼부리 안으로 안개가 밀려온다.
산의 붉은 눈시울을 감추기 위해
맑은 햇살 아래서 안개가 밀려온다.
세상은 여전히 안개 속
한참을 그렇게 안개 속에 서 있으려니
차츰 안개 속에서도 보는 법을 익히게 된다.
들꽃과 인사한다.
누가 불러주지 않아도 스스로 곱다.
정상의 표지석은
영아리 습지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보고 왔는데
사람들은 탁 트인 이곳을 정상이라 여긴다.
모든 게 다 마음놀음이다.
일명 '말하는 바위'
바위도 새순을 틔우나 보다.
서로 의지하고 서로 견딘다.
이 바위는 '아무도 이름을 붙여 주지 않은 바위'
그래도 꽃을 품었다.
하하 하하
2음절로 웃는 까마귀가
잠시 쉬는 바위
유성이 쏟아지면
꽃이 되는가.
그것이 산의 법인가.
하늬복이, 마복이, 어오름은 어디?
다시 구름이 피어나는 서영아리 따뜻한 품에 앉아
나는 존레논을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