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따라비의 눈물

산드륵 2010. 11. 1.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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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매듭을

어디서 풀어 제칠까 잠깐 고민하다가

표선면 가시리의 따라비로 향했다. 

  

따라비의 주차장에 득실거리는 사람들을 피해

북부 능선을 따라 고사리길을 타고 올라간다.

 

물매화

 

내가 너무 늦었나.

물매화는 어느새 꽃잎을 안으로 말아들이며

서서히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인사가 늦어진 이에게 회한이 깊듯 눈물같은 꽃술이 달렸다.

 

  

따라비 오름

  

땅하래비.

 

'따라비'의 여러가지 어원 중

'땅 할아버지'로 풀이되는 '땅하래비'라는 어원을 믿고 싶은 건

이 땅에서 느껴지는 따뜻하고 다정한 할아버지의 미소 때문  

  

하늘에 가까운 산책길

 

바람은 부드럽다.

 

발바닥은 편안하다.

 

이곳에서 머물수 있어

가을도 스스로 행복했기를 바란다.

 

바람개비처럼 연달아 있는 세 개의 굼부리

 

바람개비가 불러내 곱게 담긴 가을의 바람

  

산정의 꽃향유

 

가을의 나비도

겨울을 준비하려는듯 오래 꽃향유를 떠나지 않고 있다.

 

산 아래를 내려다 본다.

밭 가운데 단단한 암반들이 들어서 있는 모습이

기계로 개간하기 이전의 옛 제주의 농지를 보는 듯하다.

 

다시 시선을 돌리니

두 눈을 의심해야 할 풍경이 다가온다.

따라비 오름과 큰사슴이오름 사이의 드넓은 지대가 모두 새카맣게 그을려 있다.

 

태워버렸다.

한 줌 재로 사라져버린 그곳으로

새로운 골프장이 들어서려는지

전에 없던 길이 나고 포크레인이 드나들고 있다.

 

가슴에 시커멓게 그을름이 낀다.

그래서 물매화는 저리 빨리 꽃잎을 거두어 버렸던 것인가. 

 

꽃들이 심상치 않다.

 

서둘러 떠나려 한다.

 

따라비의 고운 능선

 

그 능선 끝자락에 앉은 무덤의 비석은

오름의 묘비인듯

돌아보는 발걸음을 안타깝게 한다. 

 

아직 가을이 남았다.

 

아직 샘도 깊다.

 

물을 먹고간 노루의 똥도 아직 따뜻하다.

 

그들이 서둘러 떠난 샘에

따라비의 눈물이 고였다.

 

 

 

 

 

 

 

너의 의미-산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