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봉개동 민오름

산드륵 2010. 11. 8.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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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햇살은 부드럽다.

 

수풀 속의 꽃들도

고개 들어 볕바라기를 한다. 

 

언제나 같은 시각

시골 정류장 그 자리에

지팡이를 짚고 우두커니 앉아 있던 할머니에게서 느꼈던 그 빛깔.

 

 

출근시간마다 만나는 그 할머니는

기다릴 사람이 없음에도 누군가 기다리듯

갈 곳이 없음에도 여장을 차리고 나와 앉아

정류장에서 볕바리기를 하고 간다.  

가을은 그런 빛깔이다.

 

제주시 봉개동 민오름

 

제주의 오름 중에는

민오름이라는 이름을 가진 오름들이 많은데

그중 대부분은 이름과 달리 빽빽한 수림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봉개동 민오름의 경우는

세모 형태의 산정 모습이

무당이 쓰는 고깔 형태의 모자를 닮았다고 하여 무녜오름이라고도 불리는데

차라리 그 이름을 찾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된다.

 

근처의 절물오름과 함께

하나의 트레킹 코스로 연결되어 

산책로가 일찌감치 정비되어 있기 때문에 오르는데 무리는 없다.

  

산정의 북사면 중턱의 깔떼기형 굼부리와

북동 방향으로 벌어진 말굽형 굼부리를 찾아 보려고

가시 덩굴을 헤쳐 들어갔지만

굼부리는 이미 깊은 숲에 잠겨 있었다.

 

굼부리는 포기하고 가을을 찾아 나선다.

 

가을날의 오후 

 

키 작은 나무에 기대어

우두커니 보내는 가을의 오후 

 

곶자왈도 서서히 가을로 물들고 있다.

 

가을의 그림자

 

지그리 오름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다가

발 아래 세모난 그림자를 보고야

내가 서 있는 곳이 민오름임을 깨닫는다.

 

멀리 볼 것 없나 보다.

제 스스로를 비추어 보는 거울은 

발 아래 그림자

  

나무의 줄기를 감고 올라와 열매를 맺은 덩굴 식물 

그 맹렬한 번식에 원래의 나무는 스스로도 제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한라의 단풍이 서서히 흘러내려오고 있다.

 

조릿대를 밟고 무엇인가 검은 물체 두 마리가 휙 하고 사라진다.

겨울채비를 하던 산짐승들이다.

 

그렇다.

곧 겨울이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나도 저들처럼 겨울채비를 해야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