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륵 2011. 5. 2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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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도 다 가는데 통풍이 사라지지 않는다.

 

살아온 세월만큼 통풍은 쌓이는데

알고보면 지난날의 간절했던 기원조차 모두 통풍이었나.

 

자꾸 허허로워지는 마음을 다잡고 산행을 강행한다.

 

오월의 꽃에게 길을 묻는다.

 

모든 모습 뒤에는 소리가 있다.

 

오월의 꽃이 전하는 소리.

그의 안내를 따라 삼의양 오름 진지동굴을 찾아 걸었다.

 

한라산 관음사 길에서

삼의양 오름으로 오르는 길로 스미면

트레킹 코스 마지막 지점에서 발견되는 진지동굴

 

숲 속 계곡에 자리한 삼의양 진지동굴은

일본군 사령부가 주둔하기 위해 구축한 것으로 추측되는 곳이다.

 

진지동굴 앞의 안내문

 

진지동굴의 내부

 

어둠 속을 따라가다 꺽인 곳에서

녹슨 철문이 발견된다.

 

어둠 속에서는 분간할 수 없었는데

카메라가 본 진지동굴 내부는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진지동굴이 교회의 기도처로 사용되다가 시설물이 철거되었다고 하는데

굳이 뭐라 하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쓰레기

 

철문 안쪽으로 카메라를 들이댔는데

알 수 없는 영상이 잡혔다.

 

장비가 없어서

카메라 불빛에만 의지해 찍다보니

더 안쪽으로는 들어가지 못한다.

 

1945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일본 본토의 사수를 위해 제주도를 전초기지로 정하고 진지 구축 계획을 수립하고 작전을 감행했다.

당시 제주도의 인구는 약 23만 여명.

일본군의 총 병력인원은 7만 4,781명. 일본군 중 한국인은 군속과 군인 1만 7,161명

제주도민들은 전쟁터로 탄광노무자로 끌려다녔고 어린이들도 비행장 건설과 진지 구축에 동원되었다.

마을마다 식량 공출이 이어졌다.

 

일본군의 주요 진지 구축은

복곽진지, 주저항진지, 전진거점진지, 위장진지 등으로 구축 예정이었으나 일본왕의 항복으로 멈추었다.

제주도 지상 지하 약 600-700 곳에 구축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까지 확인 된 곳만도 450여곳.


 

일본왕이 항복을 선언한 후 제주도에 미군이 들어온 것은 1945년 9월 28일.

항복문서를 받기 위하여 육군대령 그린(Green)과 해군중령 일든(Walden)이 요원 38명과 함께 도착했다.

점령군으로 제주에 들어온 미군은

육군사령관 원산등(遠山登)과 제주해군사령관 빈전승일(濱田昇一) 제주도 주재 사무관 도사 천전전평(千田專平)으로부터 항복문서를 받았고

이로서 제주도 진지 구축은 멈추게 되었다.

일본 항복 후 제주도에 주둔하던 일본군 병사들은

1945년 10월 23일부터 11월 12일까지 10회에 걸쳐 LST함 5척으로 제주를 떠나 일본 사세보(仕世保)로 철수하였다.

 

진지동굴 계곡 끝에는 맑은샘

 

곳곳에 샘이 있어

과거 이 오름의 이름은 새미오름이었다는데

찾는이 없으니 이름도 사라지고마나 보다.  

 

산수국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길을 따라

오름의 정상을 따라 걷는다.

 

눈꽃송이

 

오월의 꽃은 순백이다.

 

꽃에 취했다가도 다시 걸어야 하는 길 

 

칼다리내

 

물 많은 산

사연도 많을 수밖에 

 

칼다리내를 건너자 탁 트인 고사리밭.

표고 574m의 삼의양 오름 정상이 눈앞에 다가온다.

 

솔잎의 매끄러운 촉감이 발에 편하다.

 

청남색 수국도 머지않아 제빛을 드러내려 한다.

 

산중턱의 샘

 

이 샘이 흐르다가

흙붉은 오름의 하천과 합류해 산지천에 이른다 한다.

모든 것의 시작은 이처럼 단순하고 소박한 것인가 보다.

 

잡목 사이로 언뜻 보이는 굼부리

원래는 원형 하구였으나 남쪽 둘레가 파괴되어 변형된 말굽형을 띠게 되었다.

 

마른 솔내에 마음이 편해진다.

 

솔길이 끝나는 곳

삼의양 오름의 정상

 

제주시내의 모습이 가까이 내려다보인다.

 

 

별빛누리공원

안개에 쌓여서 오늘밤 별을 보기는 어렵겠다.

 

정상의 능선을 따라 누운 유택들

 

동서남북의 날씨가 모두 다르다.

 

젖은 바람이 몰려오는 정상에서

긴 숨을 내쉰다.

 

어차피 번거로운 향기와 소리를 떠날 수 없다면

산의 향기와 산의 소리에 나를 맡길 수밖에. 

 

산을 찾는다.

나이들어 더욱 좋아지는 산.

산아.

그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