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리오름
조천읍 교래리 지그리오름
표고 643m의 큰지그리 오름과 표고 504m의 족은지그리 오름으로 이루어진 화산체.
쑥부쟁이가 올라온 것을 보니
산은 어느새 가을이다.
물매화를 만나고서야
가을이 왔음을 깊이 느끼곤 했었는데
지그리엔 물매화가 없었다.
그 대신 지천에 깔린 물봉선이 가을의 산행길을 기다리고 있다.
추억 속의 틀나무
오랫만에 틀을 맛보았다.
그 맛은 변함이 없었지만 이미 입맛은 예전같지 않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과거의 맛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의 맛에 구속되지 않아야
제대로 틀을 맛볼 수 있다는 생각.
족은지그리오름의 숲길
사방이 숲에 막혀 있어 정상을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이 길에 가득한 솔향이 모든 것을 족하게 한다.
앞사람이 솔향을 전하고
뒷사람이 그 향을 맡으며 걷는 길
족은지그리오름을 건너
노루가 지나던 숲길로 스민다.
큰지그리오름으로 오르는 길
낙엽활엽수림의 드넓은 곶자왈이 펼쳐져 있다.
오름사면에서는 복수초와 변산바람꽃 등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교래 자연 휴양림이 개장되면서
다급히 개장된 이 길에서 그 꽃을 찾는 것은 차라리 무례한 일.
화산구조선의 하나인 한라산-김녕선상에 있는 족은지그리 큰지그리오름.
백록담에서부터 흙붉은 오름, 물장오리, 견월악, 봉개민오름, 지그리, 바농오름, 새미오름을 거쳐
구좌읍 김녕리 묘산봉과 입산봉까지 일직선상으로 화산구조선이 이어진다.
바로 앞에는 민오름이 다가서 있다.
한라의 능선
정상에서 더욱 가까운 바농오름
거친오름
큰지그리오름과 족은지그리오름 품에 안긴 알오름
목을 축이고 마음을 쉬고
그렇게, 무착무속, 그렇게 쉴 수만 있다면 어느 길인들 보리도가 아닐 수 없건마는
수행하다 죽자고 한 약속은 점점 잊혀져만 가고
다시 머리카락 수보다 더 많은 번민만 쌓여가는 가을이 되었다.
아흐, 미친듯 산을 찾아야만 할 운명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