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큰사슴이오름의 굼부리 길

산드륵 2011. 10. 10.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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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슴이오름으로

가을을 만나러 간다.

 

표선면 북서부의 드넓은 곶자왈 지역에

나란히 마주한 큰사슴이오름과 족은사슴이오름

 

정석비행장 옆으로 난 큰사슴이오름 오르는 길

 

가을이 이만큼 성큼 들어섰으니

물매화를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표고 474.5m의 큰사슴이오름

 

가을이 왔다고 종이 울린다.

 

가을을 기다려 

 

때를 어기지 않고 피는 들꽃들

 

지난 여름과 다가올 겨울을

지금 가을에 한꺼번에 품고 피었다.

 

정석비행장 그 뒤로 영아리오름

 

한라를 따라 흐르는 부드러운 능선

 

능선을 넘어온 한라의 운무에 온몸이 젖는다. 

 

바람개비가 돌지 않는다.

 

그러나 물결을 타는 억새

 

흔들림은 바람 탓이 아니라

제 마음 탓임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바람없는 허공을 흔들고 있다.

 

큰사슴이 중턱을 가로질러 족은사슴이 쪽으로 건너가 보았다.

절벽, 아찔하게 깊다.

마주한 족은사슴이의 초록 숲에 다리가 휘청인다.

 

모두가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곳은 어디인가.

달 뜨는 곳인가.

 

이 길에 노을이 지는 상상을 하며

이 길 끝에 달이 걸리는 상상을 하며 걷는다.

시절을 맞추지 못하니 피어나는 환상.

물매화도 없다.

그도 아직 시절인연이 아니다.

 

시절 인연은 다른데서 온다.

큰사슴이 정상에 오르니

굼부리 안으로 새로 난 길이 보인다.

 

깊이 55m의 둥근 굼부리를 감싸도는

새 길이 생겼다.

 

이전에는 숲에 가려 확인하기 어려웠던 큰사슴이의 굼부리가 완연히 드러난다.

눈 덮힌 들판에서 첫발을 디디듯 조심스레 굼부리 안을 걷는다.

맑고 싱그러운 향내가 난다.

 

그러나 과작한 산틀이

등산화에 밟혀 벌겋게 뭉게질 때마다

상처를 디디듯 발다닥이 저렸다.

 

굼부리 안의 일본군 진지동굴

군화에 짓밟혔던 제주의 상처가 깊은 굼부리 안에까지 새겨져 있다.

 

풍경

 

풍경에서 풍경소리

 

생각을 잠재우는 풍경소리

 

고요한 풍경소리

 

바람마저 잠재운다.

 

앞서가는 사람아.

바람 없는 산길에서조차

덜컹덜컹 쉬지 않는 생각에 시달리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홀로 걷는 사람아.

꿈길로는 왜 가느냐. 달도 없는 꿈길을

물매화는 왜 찾느냐. 산향이 이리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