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오름
제주시 봉개동 거친오름을 바라본다.
바라볼 때마다
돌덩이 하나 얹은듯 마음이 묵직해지는 오름이다.
거친오름은
제주 4.3 평화 공원을 지나
노루생태관찰원에서 진입하게 되어 있다.
표고 618.5m 비고 약 150m의 거친오름
산세가 거칠어 황악, 거체악 등의 한자어로 불리기도 하는데
크고 작은 등성이가 굽이진 사이로 깊은 골이 패였다.
1949년 1월 6일
이승만 토벌대의 토끼몰이를 피해
이곳 거친오름으로 달아나던 인근 주민들 중
등에 총을 맞은 한 젖먹이의 어미가
뜨거운 선혈로 아이의 마지막 숨을 보듬었던 곳
48년 11월 20일 봉개리 초토화
49년 2월 동부 8리 작전으로 완전 섬멸
더 거친 더 깊은 숲 속으로 내몰려야 했던 옛 사람들도
저 한라를 보았을까.
멀리 개오리오름의 송신탑은
그들에게 무슨 소식을 전하고 있을까.
숲에 잠긴 울음소리는
누가 듣나.
거친오름 숲속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숲속은
마치 저승에서 바라보는 이승처럼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보인다.
거친오름 중턱으로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숲길
숲이 터진 사이로 4.3 평화 공원이 보인다.
토벌대에 의해 섬멸당한 주민들의 위령비가 빼곡하다.
온기 없는 세상의 풍경
헤쳐놓은 숲길에서
어린 노루 한 마리가 마냥 서성이고 있다.
노루 뒤로 꿩도 걸어나온다.
꿩은 노루에 놀라 멈추고 노루는 나에게 놀라 멈추고
한동안 그렇게 서로 긴장하고 있다.
노루를 피해 내가 먼저 다시 숲길을 재촉한다.
오름의 둘레를 한바퀴 돌아 원점으로 돌아오고
다시 또 산을 살피며 걸어도
거친오름의 정상으로 가는 길은 쉬 발견하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무작정 거친 숲으로 치고 들어갔다.
길이 끊긴 정상에 어렵게 올랐다.
거친오름을 둘러선 지그리오름, 민오름, 절물오름
49년 군의 동부 8리 주민 대토벌을 계기로 주민들이 희생당하고
봉개동에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총구를 피해 숲으로 숨어든 주민들이
움집을 짓고 은신 생활을 하기도 했던 곳
누군가는 이야기해야 한다.
드러나지 못하고 가면을 쓰게 해선 안된다.
달빛에 가려 신화가 되게 해서는 안된다.
그러기야 어렵겠지만
정직하게 이야기 되어야 한다.
제 뜻을 쉬 펼쳐 놓을 수 없는
가여운 이들을 위해서
누군가는 연필을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