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륵 2012. 5. 29.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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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허락을 받았다.

한라의 성지, 그 앞에 섰다.

 

한라의 성지

그중 물장오리로 가는 길에는

촘촘한 결계가 쳐져 있다.

 

독초로 이름난 박새.

꽃으로 결계를 치고 삿된 것들을 막는다.

꽃으로 말하는 산의 마음에 나를 맡긴다.

그 산이 허락할 때에만 비로소 결계를 넘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바위와 하나된 나무

바위라는 고정관념이 없었던 나무

먼지같은 상념이 없었던 나무

나무 앞에서 이제는 알 것도 같다.

자유란 이런 것이구나

 

무심히 서로를 보듬는

경계없는 이 모습이 산이구나, 자유구나.

 

태역장오리 정상에서

물장오리를 향해 한없이 걷는다.

한없이 걷는다.

따질 이 없는 곳이니 까마귀가 아예 대놓고 사람의 말을 한다.

길을 일러주는데 나는 아무 것도 알아듣지 못한다.

 

태역이 많아서 태역장오리라 한다는데

태역은 태역장오리를 내려오니 볼 수 있었다.

태역밭에서 바라보는 불칸디오름, 어후오름, 성널오름의 모습.

 

불칸디오름

 

태역밭에서 오락가락 하다가

마음을 정리하고 곧장 물장오리로 향했다.

쉴 수 있었던 것은 어쩌다 꽃과 마주칠 때 뿐

 

물장오리로 가는 길은 가파르다

 

정상에서 보이는 물오름

 

물찻오름과 넙거리, 궤펜이오름

 

성널오름

 

오름, 오름

눈이 아득해진다.

 

마음도 아득해진다.

초록의 숲 사이에서

은빛으로 밝게 번지는 물장오리 화구호 

 

설문대 할망이 빠져 죽었다는 그곳

한라의 성지

 

마음이 흔들린다.

신들이 결계를 친 곳이어서 그런가.

 

그러나 196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 하에서

산 아래 제주컨트리클럽에서 이곳의 물을 골프장으로 빼돌리면서

화구호의 수량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현재까지도 그에 대한 어떤 조사도, 검증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속수무책일 따름이다.

그동안 주변의 식생은 계속해서 변해가고

화구호의 심장도 타들어가고 있다.

 

거짓말쟁이들의 탐욕스런 손길이

이곳에까지 스몄다는 사실에

꽃그늘에서도 쉬지 못한다.

 

꽃그늘을 바쁘게 스쳐 지나간다.

 

유구무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