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산 수도암
2012. 7. 31 오후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수도산 수도암.
현재는 김천 청암사의 부속 암자로
신라 859년 헌안왕 3년 도선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선원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곳이니
산 아래서부터 가파른 길을 걸어올라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도선국사는
수도산 정상 부근의 이 절터를 발견하고는
장차 수많은 수행자들이 배출될 곳이라 하여 기뻐하며
7일 동안 춤을 추었다고 전해진다.
허리가 저절로 굽혀지는 가파른 길을 올랐으나
마음은 더없이 시원하다.
연화봉과 일지봉이 감싸고 있어
공덕과 지혜를 모두 갖추었다는 수도암
모든 족쇄를 풀어 버린 듯
시원하고 활달한 기운이 넘치는 곳
수도암
현판은 경허스님의 글씨라고 알려져 있다.
수도암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 당시 일부 피해를 입고
6.25전쟁 당시 빨치산 소탕 작전으로 전소되었다가
1900년에 이르러 포응화상에 의해 중수되었다.
수도암의 본존불을 모시고 있는 대적광전
가슴 앞에서 왼손의 검지를 감싸쥔 지권인을 하고 있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이 불상은 9세기경 거창의 가북면 북석리에서 조성되었는데
이곳까지의 운반이 어려웠다.
한 노승이 이 불상을 업고 사찰 입구까지 겨우 올라왔는데
그만 칡덩굴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이에 노승이 산신을 불러 꾸짖고 칡덩굴을 모두 없애게 했기 때문에
오늘날도 이곳에는 칡덩굴이 없다고 한다.
그만큼 운반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과 하나가 되기 위해
오늘도 많은 수행자들이 하안거에 들어 있는 선원.
경허스님께서 찾으면서 큰 선풍이 불었으니
큰 사람의 향기는 가히 헤아리기가 어려운 듯하다.
대적광전 앞의 수도암 삼층석탑
동탑과 서탑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보물 제297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두 탑은 서로 다른 양식을 취하고 있다.
원래 이 수도암의 형세는
옥녀직금형으로
비로자나좌상이 모셔져 있는 곳이
옥녀가 베틀을 짜는 곳이어서
대적광전 앞으로
베틀의 기둥을 상징하는 두 탑을 세웠다고 한다.
탑신에 새겨진 여래상.
여래상 앞에 밀짚모자는
울력을 하던 스님의 것인지 땀에 흠뻑 젖어 있다.
미소짓는 여래상
석등
약광전
약사여래불
머리에 관을 쓰고
이마에는 흰 빛을 내는 백호가 선명하다.
도선국사가 조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약사여래불은
금오산의 약사암과 직지사 삼성암의 약사여래좌상과 함께 방광을 하였다 하여
삼형제 여래불로도 불려진다.
나한전
영험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하는 곳이다.
푸르고 시원한 기운이 감돌던 수도암.
수도암의 청정한 기운은
가파른 산길에서
노스님을 껴안듯 모시고 올라가던 눈푸른 납자를 보았을 때
이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