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륵 2013. 8. 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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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가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큰비가 와도 한라산을 먼저 쳐다보고

가뭄이 들어도 한라산을 먼저 쳐다보는 제주사람들.

백록담이 말랐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행장을 차려 길을 나선다. 

 

관음사에서 백록담까지 8.7km.

관음사코스는

한라산 정상에 오르는 등반코스 중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코스로

왕복 10여 시간이 소요된다.

 

구린굴.

총연장 442m의 이 굴은

얼음 창고로 사용되던 곳.

제주도의 동굴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굴로 알려져 있다.

 

산에 살며 숯을 구워 팔던

옛 제주인들의 흔적도 간간이 보인다.

 

한라의 푸른 숲길을 3.2km 정도 걸으니

서서히 탐라계곡으로 들어선다.

 

길이 좋다.

누군가는 이 길 위에서 걸을 맛이 난다라고 하였던가.

맑은 기운이 강하게 주위를 감돈다.

 

탐라계곡 목교

 

목교 위를 천천히 거닐면

온몸의 세포에 가득 들어차있던

가지가지 감정들이 저절로 풀려 나간다. 

 

번뇌가 없어

영혼이 가벼운 이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이곳에서

그들의 맑은 영혼에 함께 감염이 된다.

 

한라산 정상을 향하는 이들에게 주는

한라 산신의 선한 기운을 담뿍 안고 

드디어 본격적인 산행이다.

 

지금부터 동탐라계곡과 서탐라계곡 사이에 있는

가느다란 개미등을 오르게 된다.

2.7km의 울창한 숲길을 무념무상으로 걷는다.

 

온몸의 수분을 증발시키며

마음처럼 몸도 가벼워질 때쯤 나타나는 삼각봉.

오름의 굼부리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색다른 풍경이다.

삼각봉 대피소에는

비를 피할 지붕과 쉬어갈 의자 외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미리 충분한 식수를 준비하고 오르는 것이 좋다.

 

왕관릉

 

삼각봉

 

한라의 상봉

 

낮은 구름이 계속 밀려오고 있었지만

한치 앞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한라이기에

차라리 아무 걱정도 하지 않기로 했다.

 

왕관릉

가파른 저곳을 거쳐 정상으로 향하게 된다.

 

깊은 골짜기에서

회색빛 구름이 뿜어져 오르고 있다.

저쪽 어디에선가는 소나기도 지나고 있으리라.

 

다시 맑아진 하늘

 

넘어야 할 능선이 선명해진다.

 

삼각봉대피소에서 용진각현수교까지 이어진 비탈길에서

바라보이는 풍경

 

풍경을 따라 용진각현수교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관음사코스에서 유일한 샘물이 콸콸 쏟아진다.

준비했던 물통이 이미 바닥난 터라 반가움이 더해진다.

 

용진각으로 오르는 길

 

수직바위

 

장대하게 펼쳐진 수직바위 아래로는

부드러운 초록 물결.

강함을 받치고 있는 부드러움에

메말라 있던 가슴으로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용진각에 도착했다.

그러나 용진각대피소는 사라지고 옛 모습만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1974년 건립되어 한라산을 찾는 이들에게는 추억의 공간이었으나

2007년 태풍 나리가 제주를 강타할 당시 사라지고 말았다.

산장에서 따뜻한 밥을 짓고 쏟아지는 별을 보며 아무 근심도 없었던

옛 시절이 불현듯 떠오른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깔딱돌계단을 기어올라 왕관릉에 잠시 착지한 후

다시 정상으로 가고 있다.

 

산수화는 이렇게 그려내는 것인가.

검은 먹 하나로 그려낸 옛 선인들의 그림이

추상이 아니고 사실화였음을 깨닫는다.

 

서북벽과 백록담의 능선.

 

당당하고 늠름하다.

 

소인잡배들은 저절로 부끄러워지게 하는 당당함이다.

 

이제 한고비만 돌면 정상인데

갑자기 천둥소리가 요란하다.

한라의 정상에서 듣는 천둥소리에 쉬 발길을 떼지 못한다.

그 어떤 소리보다 강하고 울림이 깊다.

 

천둥소리마저 삼키는 회색 암벽

 

신들의 공간

 

호위무사들이 둘러 감싸고 있는 곳.

 

반나절을 함께 해준 권두운이 나를 버리고 떠난다.

이제 정상에 다달았나보다.

 

 

슬쩍 백록담의 미끄러질듯 푸른 굼부리가 먼저 눈에 띤다.

 

백록담.

바닥까지 완전히 말라버렸다.

 

구름 사이에서 찰나를 기다려 드러나는

백록담의 그 모습에

바라보는 모두가 안타까워한다.

저마다의 기우제를 드릴 수밖에 방법이 없다.

 

한라산 백록담.

1950m 한라산 상봉에 올라 다시 정상을 찾는다.

이곳 어디에 혈망봉이라는 상봉 중의 상봉이 있었다고 한다.

1609년 제주판관으로 부임한 김치金緻는

'한낮이 되어서야 비로소 정상 위에 도착하여  혈망봉穴望峰을 마주하고 앉았다.'라고 했다.

그러나 김치는 '봉우리에는 한 개 분화구가 있어 전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름이 붙은 것이다라고 하여

혈망봉의 의미를 넓게 해석했다.

 

그런데 이원조 목사는 탐라지에

穴望峰 在白鹿潭南邊峰 有一竅可以通望 梢東又方巖 其形方正 如人鑿成

혈망봉은 백록담 남쪽 변두리에 있는 봉우리에 한 구멍이 뚫려 있는데 사방을 다 둘러 볼 수 있다.

조금 동쪽에는 또 방암이 있는데 그 모양은 네모나 있고 마치 사람이 쪼아서 만든 것 같다라고 기록해 놓았다.

 

1954년 발간된 증보 탐라지 명승고적조에도

혈망봉은 한라산 절정에 재在하다. 사방을 가히 통망通望할 수 있다.

동쪽에는 방암方巖이 있다. 그 형이 방정하여 사람이 쪼아 만든 것 같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누구의 기록이 사실일까.

백록담을 둘러싼 이 봉우리의 남서쪽 절벽에 윗덮개를 덮었음직한 구멍자리가 있어

그곳을 혈망봉의 위치로 추정한다고 하는데 확인은 불가능하다. 

조정철의 비석도 도움이 없이는 찾을 수가 없었다.

 

 

여기가 백록담이다.

신선들이 발을 담그고 백록주를 마시며 노는 모습을

혈망봉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나는 지나가는 구름에 걸터앉아 독하게 취할 듯하다.

 

그러나 그곳이 어딘들 어떠랴.

서 있는 이 자리가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아닐지라도

영혼이 가벼운 이들은 구름을 불러세워

다시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끝나는 자리에서 어김없이 다시 시작되는

그래서 시작도 끝도 없는 동그라미같은 산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