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래오름
애월읍의 바리메 오름을 지나
짙은 숲길을 걸으면
영함사 입구의 두 갈래 길에 마주선다.
그 길에서 오른편 숲으로 들어서면
표고 697m의 다래오름.
다래오름과 눈을 마주치기 전에
건너야 할 공초왓.
공초왓은 곰취밭의 제주어로
예전에는 이곳의 여름과 가을 사이에 무성한 곰취를 볼 수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강아지풀만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언뜻 바람의 빛깔이 보인다.
바람은 이미 가을이다.
족은바리메와 노꼬메
큰바리메
그리고
노로오름과 한대오름이 둘러싼
이곳 공초왓에서
선하디 선한 가을 바람과 함께 걷는다.
공초왓을 지나고
금성천 상류의 한 가닥인 계곡을 건너면
다래오름.
지는 반달 모습이라서 달에오름이라 했다고도 하고
'높은산'이라는 의미의 고대어 그대로 다래오름이라고도 하고
다래나무가 많아서 다래오름이라고도 한다는데
어찌된 일인지 다래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다래나무 대신
누구보다 먼저 가을에 물들어버린 산딸나무
가을이 후두둑 떨어진다.
노로오름, 한대오름 그리고 그 뒤로 한라산.
짙은 숲 때문에 한라산을 조망할 수 없어서
나무를 타고 올라가 한라산을 찾아냈다.
나무 꼭대기에서 한라를 바라보는 기분은
어린시절의 그 짜릿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산방산과 왕이메
서영아리와 빈네오름.
빈네오름 기슭은 골프장으로 잘려나갔다.
고개를 돌린다.
돌오름이 길게 누워있다.
이들에게 가을은 어떻게 오는걸까.
가을은 이들을 어떻게 불러냈을까.
그리고 그 가을을 불러낸 것은 또 누구였을까.
가을을 불러낸 것은 바람
마음이 다치지 않게
마음이 놀라지 않게
가만가만 다가와
순백의 꿈을 깨우는 바람
바람 가득한 들녘을 거닌다.
노꼬메로 바람이 흘러간다.
검은들먹오름으로 바람이 건너간다.
검은들먹오름과 한대오름에서 만난 바람이
내게로 불어온다.
오랫동안 말없이 지켜봐주는 눈길처럼
가벼운 스침에도 깊은 울림이 전해지는
그런 바람이
내게로 불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