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의佛家思議

장흥 보림사

산드륵 2014. 1. 10. 08:17
728x90

2014. 1. 3

 

 

전남 장흥 유치면 보림사.

759년 원표 대덕이 100칸에 이르는 가람을 창건하고

경덕왕이 장생표주를 세워 건설한 불국토.

   

오래전 젊은날

눈이 온세상을 덮어 모든 길이 사라졌지만

산기슭을 타고 넘어 다녀갔던 보림사에

이제 다시 노구를 이끌고 찾아들었다.

절안에 들어서니

그날의 소중했던 인연들의 좋은 향기가 

다시금 새록새록 돋아난다.

 

사천문

 

사천문의 목조 사천왕상

 

새 옷으로 곱게 갈아입은

이 목조사천왕상들은

현존하는 사천왕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조선 정조 4년 1780년 조성되었다.

전남 유형문화재 제 85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복장 속의 비장품은 도굴꾼들에 의해 망가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샘터 뒤로 대웅보전

 

석탑 뒤로 대적광전

 

759년 원표 대덕이 창건한 이곳에

821년 도의국사가 신라 구산선문 중에서 가장 먼저 가지산문(迦智山門)을 개산하였고

신라 헌안왕 859년 헌안왕의 요청으로 보조국사 체징(體澄) 스님이 보림사로 진신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불타버린 대웅전은

서쪽을 향하여 세운 정면 5칸, 측면 4칸, 중층팔작(重層八作)지붕의 큰 건물이었는데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2층까지 통해서 한 방으로 만들고

중앙 단상에는 금동석가여래상과 양협시불을 안치하였었다고 한다.

옛 대웅전이 있던 자리에 현재는 대적광전이 들어서 있으며

대웅전에 있었던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다.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좌상

 

불상의 왼팔 뒷면에 신라 헌안왕 때 조성되었다는 글이 적혀있는데

이 철조여래상은

신라말부터 고려초에 걸쳐 유행한 철조여래상 중에서도 가장 먼저 조성된 것이다.

 

경문왕이 선왕인 헌안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조성한 

보림사 삼층석탑.

국보 제 44호로 지정되어 있다.

.

샘터.

한 모금 물을 마시고 나서

키낮은 석벽에 기대어 쉰다.

이 절이 창건될 때부터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이 샘터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목을 축이고 갔을까.

다음 생애에 우리는 이 샘터에서 옷깃이나 스칠 수 있을까.

 

대웅보전

 

삼존여래와 보살들이 협시하고 있다.

 

미타전

 

미타전의 석불입상

 

이 여래상은

장흥 금산 제암산 중턱의 의상암지에서 발견된 것으로

1994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왼손이 훼손되기는 하였으나

수인의 형태가 미타정인인 것으로 보아

아미타여래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사전

 

해동초조 도의선사 진영.

도의국사는 이곳에서 가지산문을 개창한

가지산파의 개산조가 된다.

 

대웅보전 뒷편 뜨락에 모셔진 창성탑비.

 

헌강왕 6년 체징스님이 입적하자

왕은 보조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의 이름을 창성이라 하여

그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표현하였다.

 

김영이 비문을 짓고 김원과 김언경이 글씨를 썼다.

비문 글씨는 7행 중간까지 김원이 해서체로 쓰고 이후는 제자 김언경이 행서체로 썼는데

그것은 김원이 비문을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조선사 창성탑

 

사자가 받치고 선 하늘 위로

구름이 펼쳐지고 연꽃이 벌어진다.

 

사자

 

사천왕이 호위하고 있다.

 

가지산 보림사.

가는 길에 있길래 다시 찾아와봤는데

언제와도 아늑하다.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으며 끝도 좋은 길은

이처럼 언제나 그렇게 아늑하고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