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의佛家思議

지리산 화엄사

산드륵 2014. 1. 15.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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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4

 

 

지리산 화엄사.

 

지리산은

화엄사가 있어

화엄사는

지리산이 있어

늘 서로 아늑하다.

 

백제 성왕 22년인 544년

인도의 연기 조사께서

대웅상적광전과 해회당을 짓고 창건한 후

화엄의 꽃이 된 곳.

 

신라 선덕여왕 14년에는

자장율사가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모시고 4사자 3층 사리석탑과 공양탑을 세웠고

문무왕 17년에는

의상대사가 2층 4면 7칸의 사상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기고 황금장육불상을 모신 장육전과 석등을 조성하였다.

 

벽암 각성 선사비.

 

화엄사는

신라 헌강왕 때 대총림으로 승격된 이후

화엄의 연화장 세계를 이루었었으나

임진왜란을 당하여 왜장 가등청정에 의해 전소되고 말았는데

그것은 화엄사의 벽암 선사가

호남의 관문인 구례 석주관에서 승병 300여명을 조직하여 왜군에 맞서 싸운 것에 대한 보복이었다.

이후 벽암 각성 선사는

대웅전 등을 복원하며 전란의 상처를 씻기 위해 노력했다.

 

연기존자가 심어놓은 화엄의 꽃씨가 의상대사에 의해 만개하니

그래서 이곳 지리산 화엄사는

의상대사의 화엄십찰인 지리산 화엄사, 태백산 부석사, 원주 비마라사, 가야산 해인사, 비슬산 옥천사, 금정산 범어사, 팔공산 미리사, 계룡산 갑사, 웅주 가야협보원사, 삼각산 청담사 중에서도 제1찰로 불리게 되었다.

 

각황전과 대웅전

그리고 동탑과 서탑이 함께 머무는  공간.

창건 당시에는

각황전 앞으로 하나의 석등과 하나의 석탑이 배치되는 화엄의 공간이었으나

후백제 견훤의 몰락과 함께

창건 초기의 세력은 힘을 잃고

대웅전과 쌍탑을 기본 배치로 삼는 법화의 공간으로 변해갔을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

 

 

각황전에서 봐도

대웅전에서 봐도

인드라망의 투명 구슬처럼 서로가 서로를 비추며

이제는 하나의 공간이 되어버린 곳.

 

대웅전.

 

임진왜란 당시 전소된 후

인조 때 이르러 벽암선사와 문도들에 의해 복원되었다.

현판은 인조의 친숙부인 의창군의 글씨이다.

 

대웅전의 삼존불.

진여의 법신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화신, 보신의 상징인 석가모니불과 노사나불을 봉안하였다.

보관을 쓰고 있는 노사나불의 모습이 특이하다.

 

 

각황전.

원래의 각황전터에는 3층의 장육전이 있었고

사방의 벽에 화엄경이 새겨져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파괴되고 말았다.

서탑 위로 보이는 석등은

현존 석탑 중에서 가장 그 크기가 큰 것이다.

 

 

 

각황이란

임금을 깨우친다는 뜻.

조선 숙종 28년 복원하면서 각황전이라는 현판을 다시 내걸게 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화엄사의 주존각인 장육전이 들어서 있었던 각황전.

 

최초의 장육전 앞으로 석등과 석탑.

그 시선을 따라 옛 사람들은 오고갔을까.

동탑과 서탑의 조성연대도 150여년 정도의 격차를 보이고 있어

화엄사의 변화를 짐작하게 한다.

 

각황전 내부.

세 분의 부처님과 네 분의 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귀퉁이의 사자상이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생각해보면 화엄사 곳곳에 사자가 참 많다.

 

각황전 뒷편의 4사자 삼층석탑에서도 역시 사자상을 만날 수 있다.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돌아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조성한 4사자 삼층석탑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천인상(天人像)을 새기고

악기와 꽃을 받치고 춤추며 찬미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위층 기단에는 석탑을 받치고 선 4마리 사자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채 앞을 바라보고 있다.

 

사자들의 호위하고 있는 중앙에는

합장한 채 서 있는 비구니 스님.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 조사의 어머니이다. 

 

그 탑을 향해 어머니께 차를 공양하는 연기조사.

 

이형(異形) 석탑으로

불국사의 다보탑과 쌍벽을 이룬다는

4사자 삼층탑.

 

아들은 버리기 어려운 것들을 버리고 떠났지만

붓다의 마음도 결국은 어버이 마음.

떠나간 아들을 향해 기도하고 있을 어머니를 위해

한 잔 차를 올리는 연기조사의 애절한 마음이 있어

화엄사에 머무는 발길에는

언제나 잔잔한 애달픔이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