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륵 2014. 3. 2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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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래오름을 따라 걷는다.

 

안덕계곡을 흘러온 창고천이 바다에 이르는 곳

 

봄물이 맑다.

 

이곳에 봄이 들었다.

 

배부른 가마우지는 해바라기

 

그러나

그 곁에는

배고픈 물새

 

제 그림자가

제 그림자인 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른다.

 

그런 것이다.

 

제 그림자만큼의 반경에서 맴돌며

시름하는 것이다. 

 

제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다.

 

마음을 바꾸려무나

 

마음을 돌리려무나

 

멀리 보려무나.

 

혜안이 달리 혜안일까.

 

제 그림자에서 벗어나

멀리 보면 훤히 보이는 걸.

 

달콤한 꿈을 꾸고 난 동자승이 울었다지.

왜 우느냐는 스승의 말에 동자승은 울먹이며 말했다지.

다시는 그 달콤한 꿈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눈물이 흐른다 했다지.

 

달콤한 꿈만 같은 이 봄.

더러는 동자승을 비웃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꿈이 꿈인 줄 모르는 이들은 울먹일 일도 없다.

 

다래오름으로 오르는 길에 흩어져 있는 기암괴석

 

이 산이 겉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또다른 속내를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이때 알았어야 했다.

 

곳곳에 커다란 바위들이

자연적으로 혹은 인위적으로 흩어지고 모여 있음을 보고 짐작했어야 했다.

 

그러나 나 역시 내 그림자에 갇혀

눈 앞의 봄풀에만 시선이 갔다.

 

산방산, 용머리, 형제섬

 

산방굴사를 연상케 하는 저곳에서

삼박사일 선정에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민들레

 

제비꽃

 

아득한 숲속의 봄길

 

도너리에서 원물

 

그리고 군산까지

바라보이는 모든 것이 평화롭다고 느꼈다.

 

그 평화로움 속에서

진지동굴과 마주쳤다.

 

일본군의 결7호작전

 

1945년

일본 본토를 사수하기 위한

미군과의 결사항전지로 제주를 선택했던 그들의 마지막 보루

 

731부대의 세균전을

제주에서 감행하려 했었던 그들의 보루

 

이런 진지동굴이

다래오름 북사면의 등성이를 따라

7개가 구축이 되어 있다.

 

화순항으로 들어올

미군과의 대전을 위해

일제가 파놓은 진지동굴

 

강정의 모습이 떠오른다.

 

토치카

 

표적을 향해 발사!

 

그러나 우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강대국의 전쟁놀이 틈에서

고통받던 그 시절을 너무 쉽게 잊은 듯하다.

 

이제는 강정도 잊은 듯하다.

 

유사시에

표적이 된다는 사실을

유사시가 되어서야 안다면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이런 길은 또 이런 길로 이어지게 마련인데

우리는 지금 어떤 길로 가고 있는 것일까.

 

제2  진지동굴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폭 4m 높이 4m 길이 80m

 

입구와 출구가 직선으로 트여있다.

다래오름 등성이를 관통하고 있다.

 

진지동굴 출구 근처에 흩어져 있는 몽실몽실한 짱돌들

 

바닷가에나 있음직한 돌들이

산정상의 진지동굴 부근에 흩어져 있다.

진지동굴 구축 당시 사용하려 했던 것들은 아닌가 하고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다.

 

꿀풀.

달콤할까.

 

쉼터에서 바라보이는 풍경은

그저 봄날

 

그러나 길을 걸으면

다시 진지동굴

 

그 어둠이 짙다.

 

그 어둠 속에서 조금은 격해진다면 부끄러운 일일까.

더는 이 땅에 전쟁은 안된다.

전쟁을 불러올 어떤 인연도 심어서는 안된다.

긴장관계를 이용하여 권력을 유지하려는 그 어떤 세력도 안된다.

그러나 평화를 지키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 땅을 지켜낼 것인가.

눈물나는 일이다.

 

유채꽃 너머 다래오름.

'산', '높다', '신성하다'라는 어원을 지닌 '達'에서 비롯된 명칭이라 하는데

月羅峰이라 작명한 것은 또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다시 봄물을 따라 걷는다.

 

꽃길을 따라 걷는다.

 

이곳에서

강정도 가깝고

이제 곧 4.3도 가깝다.

 

 

거두절미 하고

가끔은 역사를 인격으로 바라보고

그리하여 건조한 마음을 거둬들이는 것도

4월의 제주에서 사는 방법이 아닌가 한다.

인간사를 팩트만으로 다 수용할 수 없는 까닭은

이성도 단지 자신의 고집일 따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