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오름
한라를 바라본다.
흰눈이 어디까지 내려왔나 가늠한다.
그리고 드디어 움직인다.
성판악에서 사라오름으로 가는 길.
드넓은 초원지대가 펼쳐져 한라의 정원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삼나무 군락지가 되어버린 속밭대피소를 거쳐
사라오름까지 5.2km.
왕복 5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며칠 전에는 눈이 내려주었고
오늘은 햇살이 내려주니
몇 주 전부터 미루고 미룬 보람이 있다.
산이 이끌어주는 인연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늘 그 이상이다.
빈 가지
스스로를 비우고
더욱 정갈해진 겨울숲.
그 길을 따라
눈길을 따라
발목이 시리도록 걷는다.
삼나무 군락지.
우마를 방목하던 곳이
이제는 이렇게 변했다.
속밭 대피소.
남들이 쉬어갈 때 함께 쉬어간다.
고적한 길을 걷다 느끼는 재미를 외면할 수 없다.
조금씩 걸음이 느려진다.
사라오름이 가까워졌다는 이야기다.
느려진 김에 아주 천천히 걷는다.
온종일 눈길만을 걷기가 어디 자주 있을 수 있는 일이던가.
사라오름에 올라섰다.
지난 가을내내
찰랑이던 그 호수가 얼어붙었다.
표고 1325m
호수 둘레 약 250m
한라가 거느린 오름들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라오름의 겨울 호수
모두들 호수를 가로질러 걷는다.
호수를 건너 정상에 오르면 한라.
바다 너머 구름이 깔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하늘에 구름이 섬처럼 떠 있다.
그 아래 제지기 오름과 섶섬을 보고서야
바다가 하늘인 줄 알았다.
한쪽 옆으로는 성널오름.
물오름, 논고악
성널오름, 논고악
눈이 부시다.
흙붉은오름을 바라보며
정상을 내려온다.
호수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들.
어떤이들은 서로 음식을 나누고
어떤이들은 말없이 그 풍경을 바라본다.
한라의 넉넉한 품 안에서
홀로여도 함께여도 행복하다.
하늘호수에서
다들 잠시 신선이다.
그 맑은 기운으로 세상에 내려가서도 행복하길 바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