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봄이다.
무거움을 벗고 길을 나선다.
모슬포항을 떠나 가파도로 향한다.
9시, 12시 30분, 3시 10분에 가파도로 들어가는 배가 있다.
청보리축제 기간에는 배편이 더 늘어나지만
평소에는 세 차례밖에 운행하지 않으므로 시간 조절에 유의해야 한다.
갈매기
날다날다 지치면
날개를 물결 위에 접고 쉰다.
누구나 그렇다.
물결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만 마음이 고요해지면 그 물결의 흔들림조차 고요히 바라보여질 따름.
가파도.
모슬포항에서 5.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15분 정도면 닿는다.
가파도가.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할 때부터
보리농사를 지었다더니만
언제나 보리가 청청했던 모양이다.
어느 길로 갈까 가늠한다.
가파도의 면적은 0.87㎢, 해안선 길이는 4.2㎞.
섬 한 바퀴를 도는데는 1시간 30분여 정도가 걸린다.
가파도 상동의 선착장에서 처음 만나는 할망당.
바다에 의지해 살 수밖에 없는 탓에
이 섬 곳곳에 할망당이 많다.
할망당뿐만이 아니라 이 섬 곳곳의 바닷돌을 이용한 돌담은
돌담이 많은 제주에서도 여간해서는 만나볼 수 없는 진귀한 풍경이다.
가파도의 돌담.
배 시간에 맞춰서 들썩이는 상춘객들의 재재거리는 소리가
이제는 익숙해질만도 한데
그 궁금한 소리를 따라
천천히 걸어나오는 할아버지.
젊은 날에는 저 무거운 짱돌을 번쩍 들어 돌담도 쌓으셨겠지.
해안을 따라 돌담길이 이어진다.
해안도로를 개설하면서 포크레인으로 밀어다 시멘트로 박아놓은 큰 돌 길과
제대로 대비를 이룬다.
소풍을 나온듯 쉬어
그냥 바람에 마음을 맡겨
그렇게 구비구비
앞으로 몇 구비나 남았나
고냉이돌.
처음 이 섬에 사람이 들어올 때
함께 들어온 고양이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은 뒤 저런 바위가 되었다 한다.
가파도에 본격적으로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1842년 제주목사 이원조 때부터였다.
그 이전인 영조 27년 1751년에는
제주목사 정언유가 검은 소를 키우는 목장을 설치하고 소 50마리를 방목했다.
그러다가 1840년 영국함선이 가파도에 정박하여 소를 약탈하고 죽인후 동아줄로 묶어 배에 싣자
제주 지방관이 그 사정을 알아보려 하였으나 영국함선은 대포 세 발을 쏘며 약탈을 지속했다.
그 사건 이후인 1842년
드디어 제주목사 이원조가 주민들에게 가파도에 들어가 농사를 짓는 것을 허락했고
세금을 내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보리와 고구마를 주로 재배했는데
기근이 들면 굶어죽는 것이
고양이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가파도 하동에 닿았다.
가파도에 사람이 들어올 때
샘물이 있던 상동에 주로 모여살았으나
이후 이곳 하동에서도 샘물이 발견되면서
주민들이 이곳으로 많이 옮겨 살았다고 한다.
까마귀돌
마라도가 가깝다.
가파도 하동의 포구.
오늘은 포구의 몇몇 지점만 눈에 익히고 돌아가기로 한다.
곧 다시 찾을 날이 있을 터인데
이곳 하동 포구는
겨울철에나 여객선이 드나들 듯 싶다.
바람을 피하기에 좋은 입지 조건이다.
포제단.
음력 2월이면
마을 대표들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바다를 향해 기도하는 곳이다.
바다 어디
그들의 부표가
늘 그 기도에 응답해주길 바란다.
그들의 뱃길이 늘 평안하길 함께 바란다.
가까이 다가오는 송악산과 산방산.
어느새 섬을 한바퀴 돌았나보다.
돌아갈 곳이 바로 눈앞이다.
다시 돌담길.
환해장성인지 밭담길인지 궁금하다.
제주돌담은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세계식량농업기구의 세계농어업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다.
제주시 내도동에도 둥근 돌로 돌담을 쌓은 예가 있고
동복리의 환해장성도 바닷돌로 담을 쌓았지만
이 가파도의 돌담처럼
온전히 둥근 바닷돌로만 이루어진 긴 돌담길은
디시 만나기 어려운 풍경으로 판단된다.
개엄주리코지.
마치 커다란 물소들이 제주본섬을 바라보는 모습같다.
청보리밭길.
올래꾼들을 위해 도로를 정비해 놓았지만
돌담의 원형은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밭을 일구다 나온 돌들을 한군데 모아 놓으며 시작된
제주의 돌담.
조선 이원조 목사 때부터
세금을 내며 사람 취급받는 주민들이 살기 시작하였다지만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발견되는 이곳 가파도의 이야기는
아마 그보다 더 멀리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까 한다.
섬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상동의 우물가로 왔다.
이 섬에서 처음 발견된 우물이라 한다.
섬을 한바퀴 돌 때쯤
저 멀리서 여객선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급하게 선착장으로 향했다.
잠시도 기다려주지 않는 여객선에 몸을 싣고
가파도를 떠난다.
가파도에서 3시 35분에 출항하는 여객선은
마라도를 거쳐 모슬포항으로 돌아오게 된다.
덕분에 잠깐 마라도에 닿았다.
낚시대를 드리우던
오래전의 밤바다가 기억에 새롭다.
그날밤의 달빛도 그날밤에 낚아올리던 벤자리도 모두가 낯설다.
낯섬 속에서도
여전히 가까이 있는 사람이 있어
아직은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