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륵 2015. 5. 1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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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감춰진 비경 중의 하나인 천산으로 간다.

제주시 오라 2동 산102번지.

한라산 관음사 등반로의 휴게소를 지나

농진청 난지축산연구소 열안지 방목장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이 길은

능화오름으로 오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시멘트 길이 끝나면

천산으로 가는 숲길이 시작되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오산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느닷없이 펼쳐지는 초원.


 

옛 한라의 초원지대가 이러했으리라는 짐작을 가능케 하는

천산의 풍경.

초원 군데군데 자리를 잡은 너른 그늘의 소나무는

말테우리들의 쉼터가 되었으리라.


 

초원 너머 숲의 경계에 보이는 돌담.

돌담을 쌓은 양식이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잣성을 보수해서 쌓아올린 것인지

다른 용도로 쌓아올린 것인지는

좀더 자세히 살펴 보아야 할 듯하다.

 


천산의 습지.


 

우마용으로 사용되었을 물통.

이래저래 마소를 방목하기에 적절한 조건을 갖추었는데

지금은 접근하지 못하도록 사방을 두르고 물길을 아래로 빼 두었다.

지나가는 노루에게도 한 모금을 허락하지 않는

그 이유도 알 수가 없다.  


 

드넓은 초원 여기저기 물웅덩이.

지난밤의 비를 머금은 습지들이

비로소 얼굴을 내민다.


 

초원을 가로지른 길의 용도를 몰랐는데

어디선가 차 한 대가 나타나더니

슬금슬금 지나갔다.

한라의 정상에서 생생 달리는 자동차를 만난 느낌이랄까.

길을 알고 들어왔건

길을 모르고 잘못 들어왔건

아무튼

그 이질적인 풍경이 참으로 놀라웠다.


 

저 멀리 한라의 북벽.


 

초원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한라의 북벽도 더 가까이 다가온다.

 


한라의 산철쭉은 많이 피었을까.

걸음이 느려지는 나이가 되어갈수록

한라는 더더욱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늘 그리워하며 살았건

늘 무심히 살았건

한라는 늘 제주인들의 심장 속에서 박동치고 있었음을 비로소 느낀다.


 

삼의악.


 

삼의악 정상에 올랐을 때는 보지 못했던 굼부리의 모습도

여기서는 뚜렷하게 보인다.


 

초원을 넘어

능화오름을 넘어

한라.


 

어승생악.


 

사라봉.


 

제주시내.


 

열안지오름, 검은오름, 남좃은오름, 민오름.


 

700고지 중턱에 섰을 뿐인데

제주의 동서남북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하여

이곳의 이름은 천산.


 

천산을 지켜온 나무들.


 

너른 그늘 아래서

쉬어가지 않으면 안될 듯하다.


 

오르는 길이 어렵지 않고

세상이 훤히 열려 있으며

쉬어갈 그늘조차 정갈하니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고단해진 이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곳이다.


 

이곳에서

천천히 걷기만 하여도

시비를 가리며 사느라 늘 긴장된 마음은 저절로 회복된다.

 

마음이 시비를 떠나니

한라의 능선이 저리 고왔음을

보게 된다. 알게 된다.

그래서 하늘오름은 한라 아래 있다.

하늘에서 내려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둘러볼 수 있기에

그곳은 비로소 하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