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의佛家思議

충남 금산 진악산 보석사

산드륵 2015. 8. 5.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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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31일 저녁


 

충남 군산군 남이면 석동리 진악산 보석사.


 

다시 걷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오게 되었다.

 


1592년 금산전투에서

승병을 모아 조헌과 함께 왜군에 대항했으나

700여명의 의병들과 함께 산화한

영규대사의 순절사적비.

1940년 일본경찰이

비각을 헐고 자획을 훼손하여 땅에 묻어버렸던 것을

광복 이후 다시 복원하였다.


 

순절비 옆의 비석들도 훼손이 심하다.

 


햇살 좋은 자리의 부도밭.


 

옛기억을 더듬으며

길을 오른다.


 

조금 늦었다고

새초롬 입을 다문 연꽃들.

그래도 나그네는 행복하다.


 

보석사.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의 말사.


 

885년 헌강왕 11년

조구선사가 창건하였는데

창건 당시

사찰의 앞산에서 채굴한 금으로 불상을 주조하였다 하여

보석사라 칭하였다 한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소실되었으나

1882년인 고종 19년 명성황후의 명으로 중창되어

명성황후의 원당으로 삼았다.


 

대웅전.

다포식 맞배지붕의 고풍스런 건물.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봉안하고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하였다.



항마촉지인의 수인으로

깨달음의 순간을 표현한

목조석가모니불좌상과

연꽃을 들고 있는 문수, 보현보살상은

조선시대 불상 가운데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진영각.


 

왼쪽의 진영이

기허당 영규대사이다.

임진왜란 당시

승병이 창의한 것은 영규대사가 최초인데

이 영규대사의 승병 활동은

이후 전국에서 승병이 창의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산신각.


 

대웅전 옆 의선각.

영규대사가

갑사와 보석사를 오가며 머물던 곳이다.

충청남도문화재자료 29호로 지정되어 있다.


 

불법승


 

석등에 기대어

편히 쉬고들 있다.


 

금산의 봉황천이 마르지 않는 한

금산 사람들은 굶어죽지 않는다던데

진악산 보석사의 봉황도

시원한 물줄기를 토해내고 있다.


 

능소화 앞에서 멈추는 걸음.

능소화 때문이 아니고

타종소리 때문이다.


 


타종소리가

의선대로

대웅전으로

등운선원으로 흘러간다.

 


대웅전으로

등운선원으로

심검당으로 흘러간다.


 

산아래로 흘러간다.

 


길을 따라 흘러간다.


 

종소리로 가득한 진악산.


 

진악산 보석사의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365호. 

 


뿌리가 100여평 땅 속에 퍼져 있다는

천년의 은행나무.

창건 당시 조구 선사와 그의 제자들이

육바라밀을 상징하여 여섯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천년이 흐르며 한 몸이 되었다고 한다.

마을에 변고가 있거나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는

하루종일 울었다는 은행나무.

나무조차 슬픔 앞에서 함께 우는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이겠는가.

사람 사는 세상이란

바로 더불어 함께 울어 주는

그런 세상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