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륵 2015. 10. 1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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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탈도.


 

추자면 묵리 남쪽 해상의 무인도.


 

김상헌의 남사록(1601)

해달(海獺)이 살고 있다고 기록된 섬이다.


 

혹여나

그들이 보았던 것을

나도 볼 수 있을까.

 

 

관탈이 다가온다.


 

기언원집48권 사방(四方) 2 탐라지(1689)의 기록이다.

탁라 화탈 여서 사이는

바다가 깊고 검푸르며 매서운 바람과 높은 파도가 많다.

봄과 여름에

남쪽 물마루 밖을 바라보면

높은 돛을 단 큰 선박들이 무수히 지나간다.

여기는 흑치(黑齒)의 오랑캐들이

중국과 통상하는 길목이며

또한 해외 여러 오랑캐들의 물화가 유통되는 곳이다.

 

 

화탈도 혹은 관탈도로 불리는 곳.

 

 

탐라문견록』「해산잡지(1732)의 기록이다.

보길도와 추자도에서 비스듬히 남쪽으로 내려오면 대화탈도와 소화탈도가 있다.

그 높이가 수백 장쯤 되고 돌 뼈를 묶어서 세운 것처럼 서 있다.

바람과 파도가 밤낮없이 두드려서 한 점의 흙도 남아 있지 않다.

저녁 해가 바다로 들 때면

황금빛이 넘쳐흘러 바위 면을 부딪쳐 쏘는데

온통 엷은 빛이 환히 비치면 마치 한 줌의 석탄불을 붙인 것 같다.

화탈이라는 이름은 이로 인한 것이다.

 

 

제주로 귀양오던 이들이

이곳에 다다르면

관복을 벗었다 하여

관탈이라 불렸다고도 하는 곳.
 

 

증보탐라지에는

그 옛날 한라산이 분화할 때에

비로소 높이 솟구쳐 생겨났으므로

이로 인하여 화탈(火脫)이란 명칭이 생겨났다고 한다라고 되어 있다.

 

 

무인등대로 이어지는 계단이

멀리서도 선명하다.


 

계단 아래

선착장은 물에 잠겼다


 

상상했던 것보다는

큰 섬.


 

면적은 대략 44,600

 

 

동서의 길이 300m, 남북의 길이 200m


 

관탈도와 부속 여.


 

정상 부근에는

샘물도 있었다는데

지금은

정상의 무인등대 등의 시설만이 뚜렷하다.



탐라지에는

석봉이 뾰족하고 정상에 샘이 있으며

나무는 없고 풀이 있는데

부드럽고 질겨서 기구를 만들 수 있다고 하였다.

그 풀이 어떤 풀이었는지 궁금하다.

 

 

검푸른 바다.


 

그 깊이를 알기가 어렵다.


 

새벽 4시에 출조했다는 낚시꾼들.

돌돔을 기다리고 있다.


 

관탈도를 한바퀴 돌고

이제 서서히 접근한다.


 

지세가 험해서

배를 댈 수 있는 곳도 많지가 않다.


 

계단에서 가까운 곳에 내릴 예정이다.


 

계단 밑

선착장으로도 접안할 수 있는 배가 있을지 궁금하다.


 

좋은 사람들.

그들과 함께 해서

더 좋은 나들이.


 

우리가 타고 온 배는

멀찌감치 멀어져 시간을 내어준다.


 

이제부터는

관탈의 눈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풍경.

희미하게 추자도가 보인다.


 

땅채송화.


 

돌틈의 해국.


 

관탈의 꽃.

 

 

거친 바닷바람에도

얼굴을 다치지 않아

싱그럽기만 하다.

 

 

때는 가을이라

길섶에 마중나온 억새.

섬의 손님들을

정상으로 안내한다.


 

수직 계단 아래로는

푸른 바다.

 

 

물의 행성 지구.


 

그 행성 위를 날다 지쳤나.


 

고운 깃털의 새 한마리.

죽었어도

여전히 바다를 향해 누워있다.

 

 

관탈도의 무인등대.


 

1986년에 준공되었는데

이곳의 명칭이 '화도'로 기록되어 있다.


 

정상의 모습.


 

절벽 아래에는 강태공.


 

더이상 나아갈 곳이 없다.


 

그러나

절벽 틈

여기에서 저기에서

파도소리보다 더 크게 울며 유혹하는

새소리는

참으로 청명하다.

 

 

어느 돌틈에 깃든 새인가.

 

 

저 거친 바다를 건너려

우는가.


 

누구는 날아갈 꿈을 꾸고

누구는 머무는 꿈을 꾸는 

우리는

모두

섬.


 

섬이지만

우리는 안다.

옹기종기 머물며

따뜻한 햇살을 즐길 줄

안다.


 

그래서

더더욱 아끼는 사람들.


 

점점 거칠어지는 파도 위에서

오늘의 손님들을 위해

따뜻한 커피를 마련하시는 선장님.

이러니

세상은 좋은 것.

 

어린 동자가 꿈에서 깨어나 울었다.

그 모습을 보던 스님이 물었다.

왜 우느냐.

그러자 동자가 말했다.

다시는

그 달콤한 꿈을 

꿈꿀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을 알기에

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