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륵 2015. 10. 1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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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오름.


 

가을이

여기에 있다.


 

용눈이의 하늘.


 

그 하늘 아래 하늬바람.


 

다랑쉬의 하늘.
 


그 하늘 아래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갈바람.


 

굼부리 너머

거미오름 너머

하늘마저 가을빛.


 

그 하늘빛만큼 고운

한라부추꽃까지

가을의 모든 것이

여기에 있다.

 

 

손지봉의 도톰한 굼부리.

 

 


둘레 약 600m.


 

동쪽, 서쪽, 남쪽의 세 봉우리가

서로 연달아 있는

독특한 이 모습이 손지봉의 매력.

더군다나

손지봉은

억새가 흐드러진 시월 이때가 가장 고운 듯하다.

 

 

깊이 26m의 굼부리 속까지

만발한 억새.

 

 

손지봉의 억새들은

그 길이가 2m에 거의 육박하다보니

얽힌 풀길 사이를 헤치며 나아가다가 

가끔 억새풀에 얼굴을 베이기도 한다.


 

억새를 헤치며 걷느라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곳.

그럴 때는 멈추어

걸음을 멈추어 쉬어야

쉬어쉬어 고개를 들어야

시린 가을 하늘을 만날 수 있다.


 

멈추어 바라보는 굼부리.


 

멈추어 바라보는 용눈이.

 

 

다랑쉬.


 

갈하늘.

 

 


노랗게 태어난 미역취.

 

 

노랗게 물들어가는 콩밭

그너머 높은 오름


 

그리고 가까이 거미오름까지

멈추어야 볼 수 있는

손지봉의 풍경들.


 

봄이나 여름이나 겨울에는

만날 수 없는

손지봉의 풍경.


 

시월에야

가을에야

더욱 고운 손지봉.


 

그 풍경 속을 걷는다.


 

이때가 아니면 안되는

그런 것들이

세상에는 있구나.


 

오직

어떤 때가 되어서야 가능한

그런 일들이

세상에는 있구나.


 

흘러가는 시간을

멈추게 하고 싶은

풍경.


 

그 풍경 속에

네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아마

이런 것이 가을인듯싶다.


 

덧없음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기 어려운

몇 가지 아름다운 풍경들.

그 고운 가을의 풍경을 보내려니

글을 쓰고 있는 손이

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