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지오름
손지오름.
가을이
여기에 있다.
용눈이의 하늘.
그 하늘 아래 하늬바람.
다랑쉬의 하늘.
그 하늘 아래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갈바람.
굼부리 너머
거미오름 너머
하늘마저 가을빛.
그 하늘빛만큼 고운
한라부추꽃까지
가을의 모든 것이
여기에 있다.
손지봉의 도톰한 굼부리.
둘레 약 600m.
동쪽, 서쪽, 남쪽의 세 봉우리가
서로 연달아 있는
독특한 이 모습이 손지봉의 매력.
더군다나
손지봉은
억새가 흐드러진 시월 이때가 가장 고운 듯하다.
깊이 26m의 굼부리 속까지
만발한 억새.
손지봉의 억새들은
그 길이가 2m에 거의 육박하다보니
얽힌 풀길 사이를 헤치며 나아가다가
가끔 억새풀에 얼굴을 베이기도 한다.
억새를 헤치며 걷느라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곳.
그럴 때는 멈추어
걸음을 멈추어 쉬어야
쉬어쉬어 고개를 들어야
시린 가을 하늘을 만날 수 있다.
멈추어 바라보는 굼부리.
멈추어 바라보는 용눈이.
다랑쉬.
갈하늘.
노랗게 태어난 미역취.
노랗게 물들어가는 콩밭
그너머 높은 오름
그리고 가까이 거미오름까지
멈추어야 볼 수 있는
손지봉의 풍경들.
봄이나 여름이나 겨울에는
만날 수 없는
손지봉의 풍경.
시월에야
가을에야
더욱 고운 손지봉.
그 풍경 속을 걷는다.
이때가 아니면 안되는
그런 것들이
세상에는 있구나.
오직
어떤 때가 되어서야 가능한
그런 일들이
세상에는 있구나.
흘러가는 시간을
멈추게 하고 싶은
풍경.
그 풍경 속에
네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아마
이런 것이 가을인듯싶다.
덧없음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기 어려운
몇 가지 아름다운 풍경들.
그 고운 가을의 풍경을 보내려니
글을 쓰고 있는 손이
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