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륵 2016. 4. 2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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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걷기에 좋은 풍경이 아니다.

오히려

앉아서

오래 앉아서

시간을 잊기에 좋은 풍경이다.



당오름으로 가는 길.



한경면 용수리 해안에서

고산으로 걸어들어가는 길.



눈섬과 차귀도를 곁에 두고

당오름으로 가는 길.



용수와 고산리의 해안에 걸쳐있는

이 당오름은

한라산보다 이전에

바닷속에서 폭발하여 형성되었다.



해안의 강태공.



맨발로 바위 위를 거닐며

보말로 미끼를 끼우고

낚시대를 바다에 던진 후

누워서 어신을 기다리고 있다.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고수의 자세는 변하지 않는다.

오늘 내가 무위자연인을 만난듯하다.



청보리.



초록과 파랑의 기운에

몸과 마음이 가볍다.

 


예로부터

당오름의 형상을 두고

선인독서 노승타고 백로하전(仙仁讀書 老僧打鼓 白鷺下田)이라 하였는데

남쪽 선인이 책을 읽고

동쪽 노승이 북을 두드리며

북쪽 백로가 날개를 펴 논밭에 내려앉는다면

이쪽 서쪽의 해안가는 뭐라 표현했을까 궁금해진다.


 

그러나

궁금해하지 마라.



무위자연인처럼

걷다가

쉬다가


 

더 쉬다가



그렇게

점점 가까이

선경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매 한 마리가

날개를 접고 내려 앉은 듯한 차귀도.



중국 송나라 호종단이

탐라의 지맥과 수맥을

모두 끊어버리고 본국으로 돌아갈 때

한라산신이 매로 변하여

호종단이 탄 배를 침몰시켰다는 전설이 있다.



그 한라산신을 에워싸듯

유람선들이 뱅뱅 돈다.



즐겨찾던 낚시터였는데

발길을 접은지 오래되었다.


 

그렇게 잠시 정겨운 풍경과 마주한다.

청춘도

그렇게 지나갔었다.



당오름 수풀 속의 당산봉수대터.

어이가 없다.

당산봉수대터는

당연히

현재의 표지석 윗쪽에 있는 전경초소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인데

기슭 안쪽으로 밀려 내려와 있다.



당산봉.

이 오름은

예로부터 차귀당이 있어서

당산봉 혹은 당오름으로 불렸다.

차귀당은 뱀을 모시는 사당이다.

조선 숙종 당시 이형상 목사가

섬안의 당들을 불태워 없앨 때 함께 사라졌는데

몇 해 전까지도

일주도로변 밭모퉁이에서

폐허로 남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다. 



볼래낭



4월의 햇살이

길섶의 모든 꽃들을 불러일으킬 때가 되었다.



건너편으로는 수월봉



안으로는 말굽형 굼부리.

수중에서 분출된 후 분화구 내부에서

다시 화산이 터져

알오름을 품은 복식화산이다.



아래로는 해안마을 자구내.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물 출토지.



거북바위에서 바라본

고산평야.



그렇게 걸어걸어

표고 148m  당오름 산정.



한나절이다.

당오름 산정을 밟고

다시 굼부리를 돌아내려가기까지는

한나절이 걸렸다.



밥 생각이 난다.

아주 오래전 소풍날 그랬던 것처럼

다 먹고난 빈 도시락을 보자기에 싸고

집을 향해 코 풀쩍이며 달릴 때

달가닥달가닥

허리춤에서 춤을 추던 그 도시락에

밥과 찬 몇 가지 싸고

들로 나가 밥을 먹고 싶다.

추억만으로는

여전히

허기가 가시지 않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