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살리 탐방로
서귀포시 선덕사 맞은편 숲으로
고살리 탐방로가 생긴 것을
오며가며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니겠지 했다.
설마 그곳은 아니겠지 했다.
그렇게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다가
오늘
불현듯 이곳이 궁금해졌다.
이 숲.
옛어머니들의 기도의 숲.
이 숲의 고살리 탐방로.
선덕사 앞 입석동에서 고살리 샘물터까지 2.1km이다.
쌀자루를 등에 진 채
어린 아들을 의지삼아
하루 반나절 숲길을 헤쳐
미끄러지는 고무신을 붙들고 찾아오던
어머니들의 기도의 숲.
이 숲이 열렸다.
상잣성.
원래 이 고살로 탐방로가 위치한 하례 2리는
양마단지로 조성된 마을이었다.
그런데 양마단지 조성 훨씬 이전부터
이곳에서 방목하던 상황을
상잣성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이제는
그 잣성 대신
울타리.
어웍도.
쇠달구지가 왕래하던
길 위의 쉼팡이었다고 설명해 놓았다.
어웍도라 함은
어웍밭으로 가는 길의 입구라는 뜻이다.
가을이 되면
이곳 하례 2리 남서교 일대에 억새가 흐드러지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어웍밭은
정확히 어디를 지칭하는지 알 수 없다.
혹시 알게 된다 해도 그 풍경을 만나기에는 이미 늦었을 것이다.
포크레인이 몇 번 왔다갔다 했을 터이니 말이다.
어웍도 밑으로는
효돈천의 줄기인 학림천.
이곳 숲길이
늘상 젖어있는 것은
바로 숲길 옆의 계곡 때문.
숲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원시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용암길이 구비구비 이어진다.
햇살도
숲에서는
한잎 나뭇잎.
중잣성.
그리고 마침내 다다른 곳.
속괴가 열려있다.
속괴.
이곳이
옛 어머니들이 산신제를 지내는 곳.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우뚝 선 소나무.
산신제를 지내던 바위그늘 자리.
지금도 나이드신 어머니들이 이곳을 찾는다.
예전에는 어둔 숲길을 걱정했는데
지금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한다.
집에서
고운 쌀을 등에 지고 와서
이곳에서 물을 뜨고
이 숲의 잔가지를 모아 불을 지펴
따뜻한 쌀밥을 짓고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기도를 했다.
예전에는 그랬다.
그 간절하고도 비밀스러웠던 기도의 현장이
길 위로 민낯을 드러낸 모습에
옛어머니들의 정서가
싹뚝 베어져 버려졌다는 느낌이 든다.
헛헛하다.
제주의 마지막 속살은 어디가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마 그곳은 불타는 집의 정수리겠지.
장냉이도.
사람이 죽자
길을 내어 영장을 옮겼다는 곳.
아찔한 절벽 밑으로는 늘 고인 물.
아래로 내려갈수록
수량은 더욱 풍성해진다.
한라산 산벌른내에서 쇠소깍까지 이어지는
산남의 동맥이 되는 효돈천의 실핏줄들.
그 물줄기를 따라
이 땅에 사는 어머니들의 기도가 이어져왔다.
산길을 걸어가 따뜻한 밥 한사발을 올리던 그 기도는
어머니들에게는 치유의 순간이었을텐데
그 공간이 길 위로 드러났다는 것은
더이상 이 곳에 어머니의 존재는 없다는 것인가.
그렇게 걸어 마침내 고살리.
솟는물.
건천이 대부분인 제주에서
솟는물의 의미는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을 이유로 용천수들이 대부분 사라진 현상황에서
고실리 샘물의 존재는 샘물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곳 샘물 고실리는
멈추지 말고
흘러흘러
이 땅의 모두를
상쾌히 젹셔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