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오름
가을이 왔고
꽃들이
소식을 보내왔다.
둔지오름, 돝오름, 다랑쉬오름, 높은오름.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걷는
이 길은
송당리와 덕천리 경계에 걸쳐있는
체오름 기슭.
그 기슭의 물매화.
10월에 오라했는데
그리움에
절로 터져 버린
올해 첫 물매화와
조우했다.
물매화를 살피며 걷다보니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밧돌오름.
이쯤에서
물매화에 대한
오래된 집착조차 벗는다.
다시 조금 더 걸어가면
아까보다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밧돌오름, 안돌오름의 물매화에 대한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체오름의 물매화에 대한 집착을 벗는다.
산탈나무 열매
한알 한알이 우주.
우주를 쪼아먹은 새는
어디로 날아갔나.
밧돌오름에서 거슨세미를 넘어
민오름과 비치미와 영주산까지 이어지는
용암의 길.
따라비와 큰사슴이, 작은사슴이
그리고 부소오름으로 이어진 그 길로
구름이 몰려와
날아든 새들을 감춘다.
그사이
큰사슴이, 작은사슴이와
물영아리, 마른영아리 위로는
낮게 흘러내린 하늘.
이런 것들이
흐린 날의 가을 풍경인가 싶은데
부대오름과 거문오름 방향에서는
커피향이 난다.
거문오름 입구의 나무카페는 보이지 않는다.
코가 미쳤나보다.
거친오름
거친오름 기슭의 몰순이못.
이쯤에서
체오름의 삼각점을 만난다.
굼부리
북동향으로 터진
이 말굽형 굼부리의 모양이
곡식을 까부르는 체처럼 생겼다 하여
체오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체오름 정상에서 굼부리까지 깊이는 90여m.
둘레 2000m.
평온한 지평선의 풍경과 함께 있어
더욱 대조적인 굼부리의 아가리.
체오름 굼부리만이 지니고 있는
가파른 기슭과
어둡고 침침한 분위기와
색다른 식생은
경외감을 넘어 두려움마저 불러일으킨다.
굼부리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물레나물꽃.
자청비가 서천꽃밭으로 가서 꺾어온 환생꽃인양 신비롭다.
며느리밥풀꽃도
굼부리 안을 가득채웠다.
며늘아기들이 배가 많이 고팠나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들이 주둔하기도 했었다는
체오름 굼부리 풍경.
체오름에서는
기슭을 따라
한 반나절 정도 쉬어갈 수 있지만
굼부리 안에서
오래 지체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제주 원시림의 깊이가
온하늘을 덮어버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