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여문영아리
산드륵
2017. 3. 5.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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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선면 가시리 여문영아리.
바람의 기억이
이곳에 다달았다.
이 길을 다시 찾은 것은
햇수도 가물가물한
참 오랫만의 일인데
그동안 이곳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일이 있었나보다.
산소마다 일련번호가 적혀있다.
이 땅의 영혼들에게
이제 그만 떠나라는 경고.
여문영아리오름.
신령스러운 영아리의 땅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영아리들이
이 땅에서 모두 철거당하고 나면
과연 제주가 제주다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겨울 산수국.
탈속한 꽃의 품위는 이런 것.
탐욕스런 세상을 정화시키는 빛은
겨울 산수국처럼
모든 빛을 버린 후의 빛이다.
표고 514m.
동쪽과 서쪽의 두 봉우리 사이로
깊게 패인 말굽형 굼부리를 지닌
여문영아리 정상에 섰다.
동쪽 능선에서 바라보이는
대록산, 따라비
물영아리
송천, 거린오름
그리고 한라.
그리움의 길이는
언제나 여기에서 저기까지.
여문영아리 동쪽 봉우리에서
곧바로 내려온
굼부리 내부.
길은
바람이 내어준다.
그 모습 그대로가
바람 흔적인 굼부리.
짐승들이 터준 길을 따라다니다가
더이상 길을 찾는 일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고
굼부리 중심에서
서쪽 능선을 바라보며 걸었다.
그리고
굼부리에서 빠져나오며
곧바로 마주한 오름의 길.
붉은오름
괴펜이, 물찻, 말찻오름
논고악, 성널오름
함께 있어도 그립다라는
시인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웬일인지
봄이 늦은 여문영아리.
잔잔한 바람만
홀로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