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한대오름 가는 길
산드륵
2017. 10. 2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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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빛
가을이
가을을 벗어버리기 전에
만나야할
몇가지 풍경이 있다.
그 풍경 중 하나
담담하게 시작하여
매우 깊어지는
한대오름 가을
그 가을을 만나러 가는 길
그러나
길을 잃었다.
낯설어져버린 한대오름 가는 길
실버들처럼
이리저리 휘어지고 감기던 옛 오솔길은 사라지고
새로운 길이
산턱까지 뻗어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같은 길을 두번이나 오르내리며
옛길을 찾았다.
아리송한 세상.
새로난 길을 버리고
숲으로 스미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사람의 길을 지워버리고
산정까지 차도를 이어놓은
놀라운 발상.
그나마
가을이어서
용서한다.
한대오름은
표고 921m 비고 약 30m의 나즈막한 오름으로
시야가 편하고
발이 편한 오름이다.
동녘의 초원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물이 숨어 있는 승물팟 주변에서 떠도는
향기로운 풀냄새는 아늑하기도 했었다.
가장 빛날 때가
비로소 이별할 때임을 아는 상근기의 가을들과
시선을 맞추고 걷기에
참 좋았던 이곳.
길
이 산에서 저 산으로 걷는 길
때로 어떤 길은
걸어서만 갈 수 있다.
가을도 그렇다.
심장을 까맣게 태우며
혹은 여기저기 가시에 찢기며
그렇게 걸어야만 맞이할 수 있는
풍경이
이제 또 하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