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겨울 천아숲길

산드륵 2018. 1. 14.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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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순백의 저 끝에

반짝이고 있을 것만 같은

텅빈 충만.



오늘은

그곳으로 회귀하려는 이들이

한라산으로 가는 모든 길을 막아놓았다.

성판악으로 가는 길이 막혀

어리목으로 가는 길로 들어섰으나

그곳도

흰눈의 정체.

잠시 멈췄다.

천아숲길밖에 갈 곳이 없다.

천아숲길에서 붉은오름까지 다섯시간 정도를 예상하고 들어선다.



천아숲길



눈의 깊이 최소 50여cm.



빠진 무릎을 들어올리느라

다른 생각이 치고들어올 겨를이 없다.



다행히

앞서 걸어간 이가 있어

나침반까지는 필요하지 않았지만

길없는 길에서

방향을 잡을 수 없어 혼란스러웠을 그들의 고충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무념



무상



생각의 티끌이 사라진 자리



상념이 깃들지 않는 자리에는

깊은 해방감.



그 해방감의 길이만큼

이 길을 걸을 수 있을 듯하다.



이 길에서 얼어붙은 것은

시간.



상념의 시간은

얼어붙어 더이상 흐르지 않는데

디지털 시계는

이 길에 들어선지

두시간이 넘어서고 있다고 보여준다.



이쯤에서는

오감의 반응조차 얼어붙었으니

그저 무중력의 공간을 걷듯 걸을 뿐.



그렇게 천아숲길을 걸어

이제 붉은오름으로

방향을 잡는다.



붉은오름은

표고 1061m 비고 130m



걷는 맛이 난다. 



어떤 이는 무릎까지

어떤 이는 허리까지 잠기는

눈의 깊이.



지금이 아니면 걸을 수 없는 길.



오직 지금 이 순간만 교감할 수 있는 것들.



돌아설 수도 없고

나아갈 수도 없는

지금 이 자리.



이 길에서는

백척간두, 그 사실이

매우 절박하게 느껴진다.



아차!



꿈이었구나.



꿈이었구나.

그러나 날마다 꿈이면 또 어떠리.



처음부터 좋았던 이 길.

꿈이어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