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륵 2018. 2. 2.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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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목.



『증보탐리지』에

빙담(氷潭)이라 표현한 곳.



그 어리목의 본면목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은

세상이 제 얼굴을 감추고 난

만설 이후.



해발 970m 어리목에서

사제비동산과 만세오름을 거쳐

해발 1700m 윗세오름 대피소를 지나

윗세족은오름까지가

오늘의 일정.



니르바나



얼어붙은 오감 따위는 따라오지 못하는 길



해발 1423m 사제비동산



그 동산을 넘으면

니르바나



니르바나 아니고

만세동산



만세동산 아니고

쳇망오름



저의 니르바나는 떠도는 니르바나입니다.

저는 이것을

바람으로부터 배웠습니다.


도랑물

그런 것들로부터 또 배웠습니다.


저는 영영 떠도는 학생입니다.



고은 시인의 시



절대적막의 풍경 앞에서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데

시인들의 시는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



나는 그저 먹먹하다.



정상이 가깝다.



윗세오름 대피소.

이제 이곳에서는 라면을 팔지 않는다.

해발 1700m에서의 라면을

더는 만날 수 없다.



허기진 배를 감추고

걷는다.



웃세누운오름.



영실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



이런 길 맛을

걷는 맛이라 하지.



그 길을 밟아 도착한

웃세족은오름 전망대.



구름 사이로 범섬



꿈이어서 다행이다.




꿈이어서 행복하다.



선작지왓 넘어 산방산



겨울한라.



산사람들의 로망.



이보다 더한

로망이

있을 수 없다.



이보다 더한

순간의 꽃이

있을 수 없다.



바리메 노꼬메 쳇망오름



만세동산 전망대에서

저 먼곳을 바라보다

어제 읽은

고은의 시가 생각났다.



북한 개마고원 상공을 지나갈 때

함께 가는 친구에게 죄스러웠다.

진실로

내가 탄 비행기가 떨어지기를 빌었다.

왜 그랬는지 몰라

그 구름 속 고원이

억세게도 내 저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