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사려니숲길
산드륵
2018. 10. 2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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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숲길에 가을이 왔다.
시를 잊은 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은 가슴 아리게 온다.
천미천
가을이 흘러가는 길
멀리서 빈다/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단풍드는 날/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시를 따라간다.
가을을 따라간다.
법정스님은 말씀하셨다.
걷기 좋은 날에는
책을 보는 것이 아니다.
나태주, 도종환의 시집도 덮고
무작정 길로 나선다.
한 구비 넘은 저만치에서
가을이 기다리고 있는데
어찌 떠나지 않을 수 있나.
법정스님 말씀처럼
햇살좋은 가을날에는
그 좋은 책도 덮고
그저 자리를 털고 일어서
터벅터벅
걷기나 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