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륵 2022. 12. 21. 12:00
728x90

 
찰나 흐림

 

 

찰나 맑음

 

 

찰나 흐림과 찰나 맑음이

同時

 

 

해발 326m 나즈막한 풍경 속의 영주산으로 가는 길

 

 

어느 옛적

제주도가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으로 나뉘어있던 시절에는

성읍의 영주산이

정의현의 진산이었다.

그 진산의 진면목은

바로 영주의 겨울에 있음을

아는 사람은 안다.

 

 

눈 길을 뚫으며 들판을 걷는다.

차마 어지러이 걷지 못하는 것은

이 아침 나의 발자국이

뒤 따라 오는 이의 여정이 될 터이기 때문에.

 

 

穿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朝我行跡

遂爲後人程

 

 

눈이 오면

눈인사

 

 

성산에게 눈인사

 

 

허망한 세월에게 눈인사

 

 

오고가는 이들에게 눈인사

 

 

눈인사를 마치고

시 한 수 읊어주면

비로소 겨울이 열린다.

 

 

차갑고 맑은 겨울

 

 

그 겨울의 풍경이

담연하다.

 

 

담담潭潭한 것이 얼어서

더 담담淡淡해진 세상을 걷는다.

 

 

구름이 얼어

꽃이 되니

그 꽃을 사랑하되

혹시 돌아오는 길에

그 꽃이 녹아내렸어도

내 마음이 시끄러울 것은 없다.

 

 

겨울 세상

 

 

마음이 먼저 얼어서

오히려 편안한 겨울 세상.

 

 

눈보라가 달려온다.

눈보라에 감겨 몇 번 휘어청거려봐야 겨울맛을 안다.

 

 

영주산 정상

 

 

영주산 정상에서 만나는

겨울 제주의 칼바람.

산바람이 이 정도는 되어주어야

눈사람의 마음도 이해하기에 족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