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와 벗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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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대정읍 제주추사관에서
추사와 벗들이 만난다.
2022년 12월에서 2023년 6월 30일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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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의 시절에
가장 그리운 것은
벗.
추사는
그 벗들을 위해
벗들은
추사를 위해
붓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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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 허련의 「완당 선생 해천일립상 海天一笠像」
이 그림의 모본은 동파입극도이다. 소동파가 해남도에 유배되었을 때의 모습이 제주에 유배중이던 김정희와 유사하다고 여겨 번안하여 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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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련의 호는
소치小痴
노치老痴
석치石痴
대치大痴 황공망이 부끄러워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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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각」
해남 대흥사의 무량수각 현판이다. 추사가 귀양을 가던 길에 대흥사에 들렀는데 이광사의 현판이 걸려있었다. 이에 추사는 그 현판을 내리도록 하고 자신의 글을 걸도록 했다. 그러나 훗날 제주에서의 유배생활이 끝나고 돌아가면서 다시 대흥사를 찾은 추사는 자신의 글씨를 내리고 이광사의 글씨를 다시 걸도록 했다고 한다. 원본은 대흥사 성보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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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화암사의 「무량수각」
김정희가 제주에 유배중일 때 집안의 원찰인 화암사에 써 보낸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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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창다명小窓多明」
小窓多明
使我久坐
작은 창에 환한 빛
그것이 나를 오래 앉아 있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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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의 우거에서 곧바로 지었다는
「과우즉사果寓卽事」, 혹은 「 정반도화읍 庭畔桃花泣」 으로 알려진 김정희의 시.
庭畔桃花泣 뜰의 복사꽃 우네
胡爲細雨中 가랑비 때문이겠는가
主人沈病久 내가 병이 깊은지 오래여서
不敢笑春風 봄바람에도 웃지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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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촌사벽題村舍壁」
잎이 진 버드나무 한 그루에 서까래 몇 개뿐인 집
백발의 늙은 부부 쓸쓸하네
석 자도 안되는 냇가의 길에서
가을바람에 옥수수를 먹고서 칠십년을 살았다오
촌가가 길 옆 수수밭 가운데 있고, 늙은 부부가 만족해 하고 있다. 늙은이의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았더니 칠십이라 했다. 서울에 가보았는냐고 물었더니 관가에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무엇을 먹느냐고 물으니 옥수수를 먹는다고 하였다. 나는 남북으로 정처없이 떠돌고 비바람에 흔들리다가 늙은이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는 나도 모르게 망연자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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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당」
대정향교 학생들의 공부방이었던 동재에 걸렸던 현판이다. 이곳에서 추사는 제주유생들과의 교루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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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
우리가 익히 아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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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잣나무
그 사이에 집 한 채
벗을 기다리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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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례고가」
시와 예가 여러 대에 걸쳐있는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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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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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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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전」
추사가 세상을 떠나기 3일 전에 쓴 마지막 작품이다.
봉은사에서 『화엄경수소연의초』 경판을 완성하고 경판전을 지었는데 그 경판전의 현판을 추사에게 부탁하게 된다. ' 71세의 과천 사람이 병 중에 쓰다'라고 낙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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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당」 현판
추사의 스승인 청나라 옹방강의 작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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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방강의 예서 작품이다.
옹방강은 청나라 중기의 학자로 서예가이며 금석학자이다.
김정희가 청나라 연경에서 24세 때 만나 그에게서 금석학을 배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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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문학대련」
금석학에 종횡무진함이 이와 같으니 문학과 전각, 그림은 내가 능히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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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정관萬物靜觀」
정호程顥의 시를 손재형이 썼다. 손재형은 추사의 세한도를 일본에서 찾아온 서예가이다.
萬物靜觀皆自得 만물을 고요히 바라보니 모두 스스로 얻어지고
四時佳興與人同사철마다 아름다운 흥취는 사람마다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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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동생인 김상희의 손자 김문제가 그렸다.
수복壽福을 다양하게 표현한 「백수백복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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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로향실一爐香室」
고운 햇차가 나오면
초의 의순은
그 차를 추사에게 보냈다.
먼 유배의 나라 제주에까지 햇차가 왔다.
그 초의선사를 위해
추사가 쓴 글씨이다.
「일로향실一爐香室」
인생이 그만하면 되었다.
찻물을 덥힐 화로가 놓인 그 방에
차향 끊이지 않으니
인생이 그만하면 되었다.
「일로향실一爐香室」
알고보니
추사의 벗은
화로 하나였다.
그것이면 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