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영천사지와 예기소

산드륵 2023. 8. 1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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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상효동 영천사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정의현의 사찰 2곳이 기록되어 있는데 성불암과 영천사가 그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영천사에 대해서 ‘영천사재영천천동안(靈泉寺在靈泉川東岸)이라 기록되어 있다. 영천사의 맞은편은 영천관터로 영천사와 영천관을 오가는 입구가 허물어진 채 남아있다.

 

 

효돈천을 사이에 두고 제주시 방향에는 영천사가 있고 서귀포시 방향에는 영천관이 마주보고 있다.

 

 

효돈천의 한 바위에 새겨진 관나암觀儺岩.

 

 

이원조의 『탐라지초본』에는 “영천천 냇가의 큰 바위에는 관나암觀儺岩이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옛적에 영천사 스님이 새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관나암觀儺岩'이라 함은 나례儺禮를 구경하는 바위라는 뜻이므로 이 영천사 그리고 영천관 일대에서 나례儺禮와 관련된 행사가 연례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나례儺禮는 매해 섣달 그믐날 묵은 해의 잡귀들을 몰아내던 의식이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례희儺禮戱 등으로 변천되어 갔다고 한다. 고려말 학자 이색의 '구나행驅儺行'이라는 한시에는 나례희儺禮戱의 풍경을 짐작할 수 있는 구절이 있다.

 

오방귀와 백택의 춤을 덩실덩실 추네. 불을 토하고 칼을 삼키기도 하네. 서역사람 고월의 가면극은 검거나 혹은 누렇고 눈은 새파랗구나. 그 가운데 늙은이는 허리가 굽었으나 키가 크니 모두가 남극 노인이라 경탄하네. 강남 장사꾼은 사투리로 조잘대고 날리는 반딧불처럼 나아갔다 물러섰다 경쾌도 하다. 신라 처용은 칠보 장식에 꽃가지 머리에 꽂아 향 이슬 떨어지네. 긴 소매 천천히 돌려 태평무를 추니 불그레하게 취한 뺨은 아직 술이 덜 깨었나. 황견은 방아를 찧고 용은 여의주를 다투며 온갖 짐승이 춤을 추니 요임금 시절의 뜰과 같도다.

 

『하효지』에 따르면 영천사는 고려 말에 창건되었는데 관리들이 인근의 9소장의 말을 점검하기 위해 내려왔다가 묵고 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나례儺禮 의식으로 나례희儺禮戱가 펼쳐졌다면 그 주체와 대상은 누구였을지 궁금하다.

 

 

영천관터

 

 

『신증동국여지승람』 에는 “영천관은 영천천 서쪽 언덕에 있다. 영천사(靈泉寺)와 동서로 서로 마주하였다.”라고 하였다. 조선 세조 12년 1466년 제주목사 이유의에 의해 영천에 건립되었다고 하며, 주로 말을 점검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종합해보면 정의현으로 오고가던 관리들이 고려사찰 영천사를 이용하다가 이후에 9소장의 말과 소에 대한 관리 업무가 확대되면서 영천관을 건립하게 된 것이 아닌가 추정한다.

 

 

효돈천

 

 

그 아름다운 길을 걷는다.

 

 

저만치서 걷는다.

 

 

효돈천의 풍경

 

 

제주의 마지막 심장.

 

 

제주의 오름이 모두 원형을 잃고 괴이하게 변형되고 있는 지금, 제주에 남은 제주의 것은 깊은 계곡뿐이었으나 그마저도 모두 파헤쳐지고 있다. 제주의 마지막 심장이 또 조각날까 두렵다.

 

 

예기소

 

 

쉽게 접근할 수도 없고, 쉽게 접근해서도 안되는 곳

 

 

예기소 안내문에 의하면 예기소는 고려 19대 명종 때 서울에서 내려온 검마관을 대접하기 위해서 잔치를 베풀었는데 소의 양쪽 바위에 줄을 매고 그 줄 위에서 춤을 추던 애기 기생이 잘못하여 떨어져 죽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기록의 출처를 찾아봐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

 

 

효돈천만은 끝까지 살아남기를 바라며 그 정령의 물숲을 빠져나왔다.

 

 

영천사에서 월라봉까지 걸었다.

 

 

하효마을의 고마곶도 찾았다.

 

 

고마곶은 닥나무를 재배하여 종이를 생산하던 지역이다. 이곳 하효마을뿐만아 아니라 애월의 금성지역에서도 종이 생산이 이루어진 것을 보면 탐라의 종이생산산업 규모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노을의 길

 

 

노을의 속도로 걸어 가는 길

 

 

노을이 멈춘 곳

 

 

서귀포시 보목리 섶섬 앞바다까지 걸었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