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세상

제주의 삼절신- 서재西齋 이미李美

산드륵 2024. 11. 1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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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회관 서재빌딩에 모셔진 이미李美 초상화

 

제주의 여러 문중 입도조 중에, 청주한씨 한천, 김해김씨 김만희, 경주이씨 이미는 ‘제주의 삼절신三節臣 ’로 불린다. 삼절신이란 고려가 멸망했지만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키다 제주로 유배온 고려의 충신 한천과 김만희, 이미를 일컫는 말이다. 그중에서 서재西齋 이미李美는 경주 이씨 입도조로서 그의 묘는 한라산 삼장동(三掌洞, 三藏窟, 三長洞)에 있다.

 

 

李美 입도조부님 자는 중인이시고 호는 서재이시며 중시조 20세이시고, 고려말 명재상이시며 익재공파 파조이신 익재 이제현님의 증손자이시다. (중략) 입도조님은 제주에 남아 충효의 도리, 글자교육, 예절문화, 매장문화 등을 전파하시며 후학양성에 평생을 바치셨다. 이 시기에 같은 이유로 귀양 온 이미(외도), 김만희(곽지), 한천(가시리) 이 세 분은 절개가 곧다하여 삼절신으로 추앙받으시고, 이후 강영(함덕) 등과 더불어 제주에 지식과 문화적으로 끼친 영향이 막대하여 제주 사현으로 추앙받으셨다.

입도조님이 별세하시어 삼장골을 묘소로 정하였는데, 제자들은 봉분토로 사용하고자 각자의 두건에 광양의 진흙을 채워 가져가고 전부 모은 진흙은 봉분토를 사용하고도 남아 산소 곁에 두었을 정도로 많은 제자가 참여하여 애도하였다.

 

 

서재西齋 이미李美의 묘가 있는 곳에 대하여 경주이씨 족보에 ‘삼장동三掌洞’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족보에는 한라산 서록 ‘삼장동三掌洞’에 서재공 이미李美와 그의 부인 경주김씨가 함께 모셔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지역은 세 개의 골짜기가 마치 세 손가락을 벌려놓은 것과 같다고 하여 ‘삼장동三掌洞’이라고 한다는데, 1980년대 ‘제주의 인맥’ 등에는 ‘三藏洞’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외에도 ‘三藏窟’이라고 표기한 곳도 있다. 그렇다면 이 삼장동이 김치 목사의 '유한라산기’에 기술한 ‘三長洞’과 동일한 지명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경주이씨 문중회장님의 도움으로 이미李美 선생님 묘소를 찾아 나섰다. 이 지역은 탐방금지구역이라서 여러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접근할 수 없다.

 

 

계곡의 맑은 물. 굳이 삼장물을 찾을 것도 없이 계곡 여기저기에 맑은 물이 흐른다.

 

 

삼장폭포

 

 

회장님 말씀에 의하며 ‘아주 오래전 어느 해에, 이곳 선조님의 묘소 벌초를 다른 괸당에게 맡겨놓았는데 길을 못찾아 벌초를 못했다는 말을 추석 전날 밤에야 전해 듣고, 부랴부랴 말을 타고 달려가 벌초를 하고 내려왔다’고 한다. 밤길을 달려 벌초를 하고 돌아왔다고 하는 그 얘기는 이 집안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인즉슨, 아주 오래전에는 이곳 일대가 초원과 같아서 한라로 향하는 길이 훤히 다 보였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제 말이 달리는 길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곳으로 조릿대를 헤치며 길을 찾는다. 일엽초가 잠시 쉬어가라 한다.

 

 

한라산 삼장동의 경주이씨 서재공과 그의 부인 김씨의 무덤과 추모비

 

 

문과교리 이공 정경부인 김씨지묘

 

 

무덤의 위치는 삼장동三掌洞

 

 

이미李美 선생님의 묘비는 을미乙未(1955년) 7월月에 세워졌다. 추모비는 1977년에 또다시 세운 것이다.

 

 

망주석, 문인석

 

 

망주석의 다람쥐

 

 

다람쥐가 열매를 물고 올라가는 것은 여자가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고, 다람쥐가 열매를 물고 내려가는 것은 남자가 일을 하러 나가는 모습이라고 한다. 다람쥐가 다니는 이 길은 과연 존자암으로 가는 ‘三藏洞’ 인가. 아니면 후세에 기록한대로 ‘三掌洞’인가, 혹은 김치가 걸어간 ‘三長洞’인가. 의문은 더해지고 짐작도 되지만 아직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어떤 연구센터에서 조사해 놓은 자료이다. 오류가 많이 보인다. 판서 김평의 딸이 ‘진평의 딸’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매사에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전해주는 듯하여 잠시 ‘삼장동’에 대하여 입을 닫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