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의佛家思議

순천 금둔사

산드륵 2025. 1. 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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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 금전산 금둔사 금둔선원. '금둔金芚'이란 이름처럼 '금빛 붓다의 싹'이 돋아 세상을 향기로 물들이는 곳이다.

 

 

허공에는 매화 향기, 선방에는 차 향기 배어있는 이곳에 달마대사가 짚신 한 짝 찾으러 돌아왔으니 금둔사 금둔선원 갈대잎이 스스로 눈길을 쓸고 있다.

 

 

호법선신이 상주하는 금전산 금둔사는 음력 섣달에 꽃이 피는 납월매화로 이름난 곳이다. 원래 이곳 금둔사의 납월매화는 지허스님께서 순천 낙안읍성에서 6백년 세월을 꽃피우다가 고사한 홍매화 씨를 받아 키워내신 것이다. 그 해가 1985년이었는데 지금도 여섯 그루가 여전히 맑은 꽃과 향을 피워내고 있다. 더욱이 이 납월매화는 인근 선암사, 송광사 등의 여러 매화 중에서도 가장 먼저 꽃이 핀다 하여 매화를 귀히 여기는 이들의 성지가 되었다. 그대가 가히 매화를 사랑하였다면 섣달에서 봄까지 이곳 금둔사에서 서성거리지 않을 수 없다.

 

 

금전산金錢山 금둔사金芚寺

 

전라남도 순천 낙안의 진산인 금전산 서쪽 중턱에 있는 금둔사의 최초 사명은 동림사로 알려진다. 백제 위덕왕 30년(서기 583)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데,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을 개창한 철감선사 도윤의 제자 징효대사澄曉大師 절중折中[826~900]이 891년에 이르러 이곳에 자리를 잡고 선종사찰의 문을 열었다. 징효대사 비문에 의하면, "군郡의 동림桐林을 선거禪居에 길이 예속시켜 열반涅槃할 종신처로 삼게 하였다.”라고 하여, 이곳이 달마대사의 법을 이은 선림禪林임을 증명하고 있다. 현재 징효대사 승탑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과 석조불비상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금둔사 산신굴 위쪽으로 올라가면 옛 절터도 확인할 수 있다.

 

동림사가 언제부터 금둔사로 불리게 되었는지는 문헌으로 전하지 않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 과 『동국여지지』 등에 “금둔사는 금전산에 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금둔사는 17세기 후반까지 존재하고 있다가, 18세기 후반에 편찬된 『범우고』, 19세기의 『호남읍지』 등에 기록된 것처럼 폐찰廢刹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다가 선다일여禪茶一如의 수행을 이어온 제20세 태고종 종정 지허指墟 지웅선사智雄禪師께서 1979년 금전사 기슭에서 부서진 석조불상과 삼층석탑을 발견하고 중창불사를 발원하여 현재와 같은 가람을 이루어내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이곳에 금둔선원이 들어서며 여법한 선원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당나라 때 일이다. 조주선사에게 수좌가 물었다.

 

萬法歸一 一歸何處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조주가 답했다.

내가 청주에 있을 때 옷 한 벌을 지었는데 무게가 일곱근이었다네.

 

 

금둔사 대웅전과 석탑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본존석가모니불 앞쪽에는 보살이 위호하고 뒤쪽에서는 정법안장을 이어받은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합장배례하고 있다.

 

 

지장보살마하살. 영단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 지허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날이 어두워지도록 차를 받아마시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허스님께서는 2023년 가을에 열반에 드시고 이제는 조심스럽게 걷는 촌로만 남았다.

 

 

겨울 금둔金芚

 

 

매화가 부처라

 

 

둥둥

 

 

순천 금둔사지 삼층석탑과 석조불비각

 

강원도 영월에 있는 징효대사탑비에 "징효대사 절중은 세수 74세인 900년에 입적하였는데 제자들이 스님의 사리를 모시고 동림사로 돌아가서 천우 3년(906)에 석탑을 세우고 그 금골을 안치하였다."라고 하여 이 삼층석탑이 징효대사의 사리탑임을 밝히고 있다.

 

 

금둔사지 삼층석탑의 1층 탑신 좌우면에는 불상을 향하여 다과를 공양하는 공양상이 양각되어 있다.

 

 

국가유산청 자료에 의하면 이 탑은 9세기경 석탑으로. 1988년 4월 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각부의 비례가 정연하고 수법이 세련된 전형적인 9세기 석탑 양식을 갖추고 있다. 전체 높이 4m이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1매석이며, 1층 탑신에는 우주가 모각되었고, 전후면에는 문비門扉와 자물쇠가 조각되었으며, 좌우면에는 다과를 공양하는 공양상이 양각되어 특이한 수법을 나타냈고, 2층과 3층 탑신에는 우주만 모각되었다. 각 층의 옥개석은 층급받침이 각각 5단씩이며 낙수면 하단선下端線은 수평하고 낙수면은 얇고 완만하다. 네 귀는 강하게 반전되어 경쾌감을 준다. 상륜은 3층 옥개석 정상에 찰주공만 보일 뿐, 그 이상은 전실全失되었다.

기단은 이중으로 되어 있고 기단부의 하대중석을 하대석과 한몸으로 조성하였다. 각 면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 1개씩을 모각하였다. 하대갑석은 4매로 구성되었으나 부분적으로 파손되었으며, 상면上面에는 원호圓弧와 각형角形의 상대중석받침이 각출되었고, 또한 상대중석도 4매로 구성되었고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 1개씩이 모각되었으며, 이들 기둥 사이에 8부중상八部衆像을 양각하였다. 상대갑석은 2매석으로 되었는데, 밑에는 부연이, 상부에는 각형 2단의 탑신받침이 각출되었다.

 

 

순천 금둔사지 석조불비상. 서방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아미타부처님을 비석처럼 새긴 것이다. 지붕 모양의 보개와 연꽃 대좌를 갖춘 직사각형이 평평한 돌 한쪽 면에 불상을 조각하여 마치 거대한 비석처럼 보이게 한다.

 

 

나무아미타불. 이 석조불비상은 1988년 4월 1일 국가보물로 지정되었다. 높이 3m의 보개寶蓋와 대좌를 갖춘 석불입상으로서, 독립상이 아닌 직사각형의 대형 판석 전면에 불상이 대형 비의 형태로 양각되어 있다. 양감이 풍부하고 세부표현이 정교하나 다소 긴장된 인상과 투박한 옷자락 등의 표현으로 볼 때 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손모양은 가슴으로 들어올려 전법인轉法印을 하고 있고, 판석 불상 후면 상부에는 명문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풍화가 심해 판독하기 어렵다. 석불 입상 뒷면의 상단 중앙부에는 연화좌에 무릎을 꿇고 지팡이를 든 듯한 보살상, 하부에는 꼬끼리상이 조각되어 있다고 안내되고 있으나 육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석조불비각과 사리탑은 동시대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당시 낙안은 후백제의 영역이었으므로 이 탑은 후백제시대의 유물로 판정되고 있다.

 

 

차나무와 매화나무 위로 눈꽃향

 

 

산신굴과 그 뒤로 관세음보살

 

 

낮게 엎드린 이만이 만날 수 있다.

 

 

나무관세음보살

 

 

동림선원 터

 

안내문에 의하면 동림선원은 "금둔사를 중창한 철감국사가 구산선문 중 사자산문을 창시한 후 개원하여 제자 징효대사 등과 함께 수행한 선원이다"라고 되어 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순천대학교에서 4동의 건물터를 발굴조사하였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특이한 건물지가 발굴되었는데 이러한 예는 경북 감은사지와 이곳 동림선원터뿐이라고 한다.

 

 

매화가지 뒤로 산신각과 비로자나부처님

 

 

찬 서리 고운 자태

사방을 비추어

뜰가 앞선 봄을

섣달에 차지했네

 

신라 시인 최광유의 '금둔사 납월매'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금둔사에는 납월 홍매 여섯 그루를 비롯하여 청매, 설매 등 한국 토종 매화 100여 그루가 피어난다.

 

 

매화향이 부처라!

 

 

눈밭에서 기다리는 매화향

 

 

매화향처럼 허공에 내리는 붓다

 

 

향기가 얼어 응향凝香이 되었으니

'금둔金芚'에 싹 틀 시절인연만 남았다.

 

 

한바탕 눈길을 쓸고가니 노란 은행잎이 비처럼 내린다

 

 

가는 길 오는 길 모두 보고 계신 산신할아버지. 할아버지를 만난 인연으로 2025년의 모두가 편안하기를 기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