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방산
안덕면 사계리 산방산으로 길을 나섰습니다.해발 395m의 산방산.그 크기와 둘레가한라산 백록담의 크기와 둘레에 꼭 들어맞는다는 이 아름다운 오름에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전설도 함께 합니다. 어느날 한 사냥꾼이 한라산 정상으로 사냥을 나갔습니다.그런데 마침 사슴을 발견해서 활을 당겼는데그게 그만 잘못해서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찌르고 말았습니다.이에 화가 난 옥황상제가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서쪽으로 집어 던져 버렸는데그게 바로 산방산이라 합니다. 이 산의 중턱에 자리한 산방굴사는 고려시대 시승인 혜일스님이 머물렀던 곳으로추사 김정희, 초의 의순 대사 등의 맑은 향기가 스며 오늘날도 그들을 그리워 하는 많은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산방굴사 뒤쪽에서 바라본 산방산 모습입니다.오늘 저는 산방굴사가 아니라산방산을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덕수에서 화순방향으로 가다보면 산방산 뒤쪽으로 보덕사라는 사찰로 가는 길이 있는데그 길로 가다보면 길오른으로 난 저 철문을 건너 올라가면 됩니다.
가까이서 산 정상을 바라보니 갑자기 아득해집니다.그러나 용기를 내어 걸어가기로 합니다. 오늘 내게 용기를 준 것은추사의 맑은 향기가 아닙니다. 김연일, 강창규, 방동화 스님법정사 항쟁의 주역인 그분들의 험한 여정을 쫓아 여기까지 왔습니다.아직도 학계의 한편에서 그분들의 존재를 부정하려고만 하는 시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그분들처럼 직접 걸어보고 싶었던 까닭입니다.
산방산 군데군데 솟아 있는 저 촛대바위들처럼산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급경사로만 이어져 있었습니다. 법정사 항쟁 당시 법정사 주지로서 항쟁을 이끌었던 김연일 스님이이곳 산방산 꼭대기에 있는 작은 굴에 숨어 있던 적이 있다고 하는데그때 강창규 스님이김연일 스님을 위해밥을 몰래 숨기고 끼니를 맞춰 이 길을 걸어 올라갔다고 합니다.
숲은 깊어 바람도 스미지 못하는 이곳.쉴 때도 저 줄지어선 바위들처럼급경사에 잠깐 멈추는 수밖에 없습니다.
생사를 함께 할 도반이끼니를 굶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 하나로허리춤에 밥을 숨기고 올라가던 강창규 스님!스님의 타는 목마름처럼이 산의 계곡도 바짝 말라 있었습니다.
헉헉거리며 산을 올라가니 조그만 굴이 보입니다.그러나 이 굴은 사람이 숨어살기에는 적당하지 않아 보였습니다.잘못 전해진 이야기일까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 그대로산 정상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산 정상에 올랐습니다.사방이 확 트인 것이억겁을 지고온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산에 사는 사람들이왜 진실할 수밖에 없는지 산에 오르고 나서야 가슴으로 느낍니다.
형제섬 그리고작은 고깃배들
그리고 멀리 화순포구저 평화로운 푸른 터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고 설왕설래라니 하산하기가 싫어집니다.
마라도와 가파도송악산사계리 앞바다의 아름다운 해안선
저 멀리 모슬포...그 위로 구름의 그림자가 덮혀 있습니다.신선이 된 듯한 기분인데그러나 도끼자루를 구하러 온 길이 아니고김연일, 강창규 스님의 자취를 따라 왔던 터라아쉬움을 다 털어버리지는 못했습니다.이에 사진속에 보이는 서쪽 봉우리를 향해 걸음을 향했습니다.
그런데 서쪽 봉우리 바로 밑에 사진과 같은 굴이 수풀속에 가려져 있었습니다.반가움에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도 잊었습니다.
굴 내부는 한 사람이 충분히 거주할 만 한데바위 벽에는 불상을 모셨던 자리인듯평평하게 다져진 곳도 보였습니다.
굴안에 누우면하늘에서 햇살도 들어옵니다.굴 입구를 위장해서 가린다 해도충분히 해님과 달님의 빛과 함께 하며 외롭지 않았을 거라 생각드는 것은김연일 스님, 강창규 스님그분들의 두터운 믿음이 온 몸을 감싸온 까닭입니다. 허리춤에 작은 물동이와 식은 밥 한 덩이 숨겨이 험한 길을 올랐을 강창규 스님
저도 마치 그분들의 도반이라도 된 듯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이 아름다운 산하!그곳에 깃들어 사는 이들이모두 평화롭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고난의 길을 걸었던 선인들! 존재함의 가치를그들은 알았나 봅니다.
산을 내려와 산방굴사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굴사로 오르는 길 양옆으로 옛날과 많이 달라진 산방사와 보문사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산방사에서 방동화 스님의 자취를 찾아보았습니다.가운데 비석에서 감원 방동화라는 기록이 보입니다.
..... 어느 하루자신을 완전히 잊고 신선이 되고 싶거든산방산 봉우리로 가 보시길 권합니다.그곳에서 먼저 다녀간 도반의 향기를 느끼신다면하안거의 만행으로이보다 더 좋은 길도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