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승생
사람을 버리고
산을
벗으로 청하였습니다.
한라산 북서쪽 아랫동아리
표고 1169m 지경 약 2km
제주도의 오름 중 가장 큰 산체로 추정되는
어승생악 정상에서
큰 벗 한라와 마주합니다.
어승생악에서
나의 빈 집은 보이지 않는데
산은 자꾸
나의 부재(不在)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어승생악!
예부터
명마(名馬)의 산지로 이름난 이곳은
임금이 타는 어승마(御乘馬)가
이 산 밑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어승생(御乘生)
신성(神聖)한 곳이라 하여 얼시심
몽고식 지명인 어스솜 등
여러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정조 때(1797)에는 이곳에서 용마(龍馬)가 태어나
목사 조정집이 왕에게 바치자
노정(盧正)이라는 이름을 내리기도 했는데
이 노정은
고려시대 시승 혜일스님, 의녀 김만덕 등과 더불어
제주도 삼기(三奇)로 불립니다.
또한
제주에 유배왔다가
목사 변협에 의해 장살당한
보우대사가
"이 몸은 가서, 총이말로 다시 태어나 천하를 달리리라"고 하였는데
그후 효종 때 아니나다를까 큰 총이말이 나오자
조정에서는 이를 보우의 후신이라 하여
베어 죽입니다.
그러자 갑자기 청천 벽력이 치면서
날이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했다는 기록이
탐라국서에 남아있습니다.
전설을 뒤집어 보면
보우대사를 장살하고 난
그들의 두려움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것도 같습니다.
이 어승생 정상 아래로는
화구호도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오래전 기억이지만
그때는
화구호 앞 나무들이 키가 작아서
물가에 내려가 서성였던 기억이 또렷합니다.
어승생악 정상에
일본군이 구축해놓은
토치카도
태평양 전쟁 말기의
오래된 기억을 그대로 간직한 듯 보입니다.
토치카 내부의 모습입니다.
토치카 안에 서면
사람의 시점과
산의 시점 사이에서
저 먼 곳을
바라보게 됩니다.
한 점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점과
우주를 바라보는
산의 시점
그러기에
산에서
무너져 내리는 건
토치카뿐만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산에서 내려오며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봅니다.
산의 시점을
오래 기억하려
뒤를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