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다랑쉬
가을에만 만날 수 있는 것들
가을을 기다려온 것들
그것들 중에는 다랑쉬도 있다.
마음이 열린다.
늘 보던 것에도 감사하게 된다.
심지어
이름모를 인연으로 스치는
그런 모든 것들에게조차
눈이 간다.
그것의 이름은 가을
다랑쉬에 가을이 왔다.
가을로 걸어들어 간다.
색에 차별없는 마음
그 마음으로 가을 다랑쉬를 오른다.
다랑쉬 오름 아래
짓다만 흉칙한 저 폐가들에게조차
너그러워지는 건
가을
연무를 뿌린 어느 날의 가을이라서.
멀리 세화도 보인다.
손자봉
그리고 아끈 다랑쉬
오름의 여왕이라 불리는
다랑쉬 오름은
이 구좌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오름
현대사의 아픔인
다랑쉬굴의 참사를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백약이, 높은오름 그리고 용눈이
한 눈에 모든 것이 내려다 보이는 이곳은
제주 4.3 당시
군경 토벌대가
이 다랑쉬에 올라
저 산 아래
옴팡진 밭
그 곳 궤를
그 곳 궤 속에 엎드린 사람들을
한 손가락으로 지목하기에 아주 적절했을 것이다.
토벌 작전을 짜기에 아주 적절했을 것이다.
비로 쓸듯 쓸고 내려가
겨냥하기에 안성마춤이었을 것이다.
4.3의 고통을 내려다 보기에
아주 적절한 곳
다랑쉬야.
그래서 너의 아름다움에 목이 메인다.
다랑쉬
이제 그 오름 아래 묻힌
다랑쉬굴의 역사는 잊혀지고
이 오름에는
문화시민들만 오르내린다.
표지석에 새겨진
다랑쉬굴의 아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늘도
21세기에도
제주도민을 폭도로 몰아가려는
뉴라이트와 이명박 정부의 역사관이
역사 교과서 파동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는 이때
다랑쉬의 바람은 더욱 매섭다.
이명박 정부는
일본의 침략에 대해서는 긍정적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어째서
우리 민족의 아픈 현대사에 대해서는
긍정적 미래를 부정하고
왜곡된 과거로 돌아가려 하는가!
용눈이에는
저 오름이 좋아
저 오름에서 살다가
근육이 굳어 죽은 사진 작가도 있었지.
아련히 고개 돌리면 보이는
지미봉은 또 어떻고.
바람타는 섬 제주
이 땅에서
영혼의 자유를 꿈꾸는 것은
필연이다.
권력의 총부리에 죽어간 많은 주검들을
가슴에 안고
그럼에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매일매일 온 우주를 떠도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