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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 태백산의 화엄종찰 부석사.
신라 문무왕 16년인 676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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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는 처음부터 아름다웠다.
의상대사와 그의 제자들이 676년 길 고운 이곳으로 걸어들어왔다.
초가 법당을 짓고 화엄의 세계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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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당간지주.
신라시대 세워진 석조 유물로 크기는 약 4.8m이며 보물 제255호로 지정되어 있다.
연이생緣而生 가을이 다가오는 소리 들으며
석조삼매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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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대사의 부석사는 마지막도 아름다웠다.
의상대사가 화엄을 꽃피운 이곳에서 입적한 것처럼 그의 법손들도 이곳에서 가을처럼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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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의 천왕문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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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왜 이리 아름다운가.
그것은 화엄.
찰나멸 찰나생의 삼라만물이 평등하게 이 길을 장엄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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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에 대해서 『삼국유사』에는 "의상대사가 태백산에 가서 조정의 뜻을 받들어 부석사를 세우고
대승불교를 펴니 영감이 많이 나타났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부석사의 창건 당시 모습은 현재 의상대사의 영정을 모신 조사당을 중심으로 초가 법당들이 여기저기
둘러선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다가 신라 경문왕 무렵 부석사 화엄종을 널리 드날린 신림대사에 의해 대석단, 석등, 석룡, 장대석,
석탑 등이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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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산 부석사 만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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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끝자락 봉황이 들어선 자리가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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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의 목어와 북.
운판은 구름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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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안양루.
난간 아래에서는 안양문이라 쓰인 편액이 보이고, 위층 마당에서는 안양루라 쓰인 편액이 보인다.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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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安養이라 함은 극락을 이르는 말이다.
극락으로 들어가는 문인 안양문을 거치면 곧바로 극락의 누각인 안양루가 나타나고, 이어서 극락세계 무량수전이 나타나게 되는 구조이다.
이 누각 안에는 시인묵객들의 글이 빼곡하게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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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무량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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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앞의 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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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은 무량수 무량불인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전각이다.
현판은 공민왕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원융국사비문에 의하면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 현종 7년인 1016년에 중수되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이 전각은 몇 차례 중수과정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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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소조아미타여래좌상.
원융국사비에 "좌우에 다른 보처補處 보살을 모시지 않고 아미타불 한 분만 모셨다."라고 한 그 아미타여래이다. 이 소조여래좌상은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거기에 진흙을 붙여 만들었다.
높이 2.78m의 크기로 우리나라 소조불상 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되었다.
국보 제 45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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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부석사 여래좌상은 다른 사찰과는 달리 법당 중앙이 아닌 서쪽에 모셔져 있다.
시선은 동쪽을 향한다. 부석사 무량수전 여래의 독특한 배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견이 있지만, 안일한 상식을 깨고 새로운 눈으로 진리의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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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등과 배례석.
부석사 석등은 신라 경문왕 당시 신림대사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석사가 자리한 태백산이 신라 오악 중에서 북악으로 숭상되고, 부석사 역시 화엄종 본찰로 우뚝 서게 됨에 따라 사찰의 규모도 확장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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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석등의 화사석 사이사이에는 보살이 서 있다.
사천왕상 대신에 보살입상이 등불을 밝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보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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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대석은 네모난 하대하석 위에 팔각 원구형의 연화대석이 얹혀졌다.
하대 하석 측면 상하에는 각대가 두드러져 있는데 각대 내부에는 안상이 8개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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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례석 연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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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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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문무왕 1년에 의상대사가 화엄학을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에 갔을 때 의상대사를 연모한 선묘라는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의상이 10년간 당나라에서 화엄을 배우고 귀국길에 올랐을 때, 그 소식을 뒤늦게 전해들은 선묘는 급히 부두로 달려갔다. 그러나 의상이 탄 배는 이미 바다를 건너고 있었다. 이에 선묘는 바다에 몸을 던져 용으로 변하여 의상대사의 배를 호위하며 신라로 무사히 귀국하게 하였다. 그후 신라 문무왕 16년 의상대사가 이곳 봉황산 기슭에 절을 지으려고 할 때, 많은 이교도들이 방해하였으나 선묘가 신룡으로 나타나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올리는 기적을 보여 이교도들을 물리쳤다. 이 돌이 그래서 부석이며, 사찰의 이름도 부석사라는 이야기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위아래 바위 사이에 약간의 틈이 있어 줄을 넣어 당기면 걸림없이 드나들어 떠 있는 돌임을 알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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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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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의 선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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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의상을 그리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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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따라 먼 길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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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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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당에도 가 보고 싶은데 공사중이다.
애쓰면 갈 수도 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여기서 길을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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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은 이미 충분히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