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에서 제1횡단도로를 타고 가다가
성판악에 채 못미쳐
길의 왼편 숲에 가려져있는 표고재배장 도로를 발견한다.
산남, 산북을 가르는
물오름, 궤펜이오름, 물찻오름, 붉은오름의 등줄기 가운데
1.5km의 수림지대에 잇닿아 있는 궤펜이 오름으로 향하는 길
표고 재배장의 오른편으로는
궤펜이, 샛궤펜이, 섯궤펜이오름으로 오를 수 있고
왼편으로는 넙거리오름으로 오를 수 있다.
초록의 숲 너머
성널오름, 사라오름, 그리고 한라는
하늘과 가까운 탓인지
하늘 빛깔을 닮아 버렸다.
인적없는 표고 재배장에서
노루의 커겅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주춤거리다가
길 왼편의 넙거리오름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발길을 돌린다.
표고 재배장 사잇길을 걸어
궤펜이, 샛궤펜이, 섯궤펜이를 만나러 간다.
주봉인 궤펜이는 표고 792m, 샛궤펜이는 757m, 섯궤펜이는 774m.
세 개의 오름 모두 산정에 굼부리가 패어 있어
분출시기가 다른 별개의 오름이었을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
숲 속의 괸물
가물지 않고 항상 괴어있어
사람도 찾고 짐승도 찾아든다.
너른 웅덩이가 한둘이 아니다.
조그만 웅덩이에
하늘이 담겨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내 몸도 둥실 구름처럼 뜬다.
구름처럼 몸의 힘을 빼고 걷다가
섯궤펭이와 마주친다.
산수국을 따라
아무 길로나 접어든다.
궤펜이
궤펜이 너머 하늘이 곱다.
발길 닿는 곳에는 산수국
눈길 닿는 곳에는 등수국
측은지심으로
서로의 마음이 닿았다.
수국과 벗이 되어 함께 걷는다.
한없이 이어진 수국의 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할 만큼
숲길은 산뜻하다.
궤펜이오름의 정상에 다달았다.
확트인 전망은 없다.
숲 너머로 거친오름, 절물오름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말찻오름, 물찻오름
절물, 민오름, 지그리오름, 바농오름
그 파란 능선에 반했다.
정상 부근의 산수국 꽃밭.
산수국은 향기가 없어 취하게는 하지 않으나
그 빛의 향기를 맡은 이들은
쉽게 눈을 떼지 못한다.
제피나무.
한 잎 따서
코에 가까이대니
그윽한 과일향이 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제피나무의 향과 아주 다르다.
굼부리를 향해 내려가고 있다.
궤펜이 굼부리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궤펜이 오름에서는 조망이 쉽지 않아
나무 사이로 어쩌다 바깥세상을 훔쳐보게 된다.
물오름이다.
너른 세상을 훔쳐보는 것도 좋지만
작고 여린 꽃에도 발길이 붙들린다.
사소한 저 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니
작고 여린 마음을 열어 이제는 미소지을 일이다.
3시간여 끝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샛궤펜이, 섯궤펜이가 이제는 과거로 물러났다.
궤펭이, 샛궤펭이, 섯궤펭이.
착한 숲길이 저 안에 있다.
숲속에서 커겅대던 노루
몇 번 울더니
이제 그만 무심히 제 할 일만 한다.
나그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뿐하게 뛰어 숲으로 사라진다.
경쾌한 그 모습에
나도 그를 따라 숲으로 사라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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