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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佛家思議

강진 백련사

by 산드륵 2014.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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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2

 

강진 백련사

동백숲길을 다시 걷는다.

 

시방 날 쇠리쇠리 후린다는

동백숲길을 다시 걷는다.

 

오래전 그날에는 너무 늦어 아쉽더니

오늘은 너무 일러 더 아쉬운

동백숲길을 다시 걷는다.

 

강진 만덕산 백련사

 

햇살이 시작되는 곳엔 만경루.

 

눈길을 끄는 현판은

동국진체의 완성자인 원교 이광사의 글씨

 

만경루 돌계단 위로는 대웅보전

 

대웅보전 현판 역시 이광사의 글씨.

 

법당으로 들어서니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목조 삼존여래상.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봉안하고 있지만

좌우 협시로 보살상을 모시지 않고

여래상을 봉안한 것이 이곳 대웅보전의 특징이라 한다.

 

법당 한쪽에 걸려있는 옛 현판.

신라 839년 무염선사에 의해 창건된

이곳 백련사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것은

고려 1232년 원묘국사가 보현도량을 개설하고 백련결사를 일으키면서부터 시작된다.

 

원묘스님은 이곳에서 백련결사를 조직하고

천태종의 법맥을 이어갔다.

 

지방호족인 강진 사람 최표, 최홍, 이인천 등의 후원으로

80여칸의 백련사가 중건되면서

그 화려한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당시에 이곳에 모여든 원묘의 제자만도 38명에 이르렀고

왕공, 귀족, 문인, 관리로 결사에 들어온 사람들도 300여명에 달했다.

 

이후 120여년간

이곳 백련사에서 배출된 국사만도 8명에 이를 정도로

백련사의 위상은 크고 높았다.

 

그러나 햇살따라

그림자도 돌고돈다.

 

무신정권이 몰락하고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면서 

폐사의 길을 걸었던 백련사.

 

그 백련사가 또다시 일어선 것은

효령대군의 후원을 입은 행호스님에 의해서였음이

백련사 사적비에 기록되어 있다.

 

이 백련사 사적비는

원래 이 자리에 남아있던 고려 원묘국사비의 귀부 위에

조선조 숙종 7년 다시 비신을 만들어 올려 조성한 것이다.

 

짧은 인생 또한

그렇고 그렇게

돌고도는 것임을 미리 알았더라면

동박새 소리에도 놀라 떨어지는 동백꽃에 마음이 붙들리지 않았을 것을.

 

겨울 햇살 속을 천천히 거닌다.

 

아난존자와 수보리존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아쉬워 한다.

'아난존자를 잘 아느냐'고 옆에서 묻는다.

웃는다.

 

천불전

 

붓다의 수인을 따라한다.

 

가만히 돌이켜 생각하니

10여년만에 한번씩은 이곳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먼훗날에도

지금처럼 다시 이 길을 걸어볼 수 있을까.

그날에는 활짝 핀 동백꽃길을 걸어볼 수 있을까.

혜일스님의 말씀처럼

이곳에서 돌아갈 길조차 잊은 것은 아니지만

돌아볼수록 그리움이 붉디붉은 낙화처럼 번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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