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6일
벗길을 따라
물길을 따라
정수사로 들어왔다.
두 개의 물길이 절 앞에서 하나로 합쳐진다고 하여 쌍계사로 불리다가
1622년 정수사로 개칭되었다는 이곳.
전남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 천태산 자락의 정수사.
신라말 애장왕 원년인 800년에 창건되었는데
조선 후기에는 내암이 26동, 외암이 22동에 이르는 대찰로 성장했다고 한다.
천태종의 본사이면서
고려청자가 전성기를 이루던 시기에
도공들의 귀의처가 되었다고 알려진 정수사.
이름없는 고려 도공들의 넋을 위로하는 사당과 혼불도 모셔져 있다.
천태종의 종지를 알고
고려청자의 비색을 제대로 볼 수 있다면
이곳 정수사도 좀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을 듯하다.
정수사 삼층석탑
대웅전의 여래를 향해 합장한 스님은
두 손을 모은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고려의 도공들도
마음을 맑히고 청자를 굽기 위해
이곳을 찾아 두 손을 모았다.
도공들은
관의 압력이 더해질 때도
이곳을 찾아 기도를 붙들었다.
기도란 무엇인가.
마침내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것이 기도가 아니던가.
모든 것을 놓아버릴 때
비로소 관세음보살도 감응한다.
고려의 비색은 그렇게 탄생했나보다.
정수사 대웅전.
1572년 중창되었으나 1592년 임란 당시 법당의 삼존불이 소실되면서
1644년 인조 22년 다시 복원되었고
현재는 지방 유형문화재 101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신 대웅전.
도공들의 모습을 엿본다.
천불전
천불의 마음은 하나지만
하나의 마음은 천개의 모양이다.
이제 천갈래 만갈래로 흩어져 있던 그 마음을
하나로 모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도량을 거닐어 본다.
물길도 이곳에서
하나로 모인다 하니
달리 또 어디에서
묘법을 구할 필요가 있을 것인가.
맑은 마음 거기에
달리 또 무엇을 더 보탤 필요가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