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내려오는 단풍을 마중 나갔다.
가을 손님이 붉은 강물처럼 다가와
내 영혼까지 붉게 물들여주길 기대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초록을 벗는 가을잎
보드라운 햇살에
마지막 인사를 보내고
한잎 두잎 비가 되어
허공에 나풀거린다.
숲을 헤매다가 길을 찾았다.
계곡을 따라
논고악의 기슭을 감싸도는 숲길
계곡 저편의 논고악이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는 것이
제대로 가는 있는 것인지 의문도 들었지만
들판을 걷는 듯한 편안함에 지칠줄을 몰랐다.
어차피 단풍길을 걸으려 나온 것이니
어디로 가든 크게 상관이 없었다.
순하디순한 사람의 눈빛을 생각나게 하는 숲길
담담히 가을을 맞이하는 그 모습과는 달리
숲은 많이 젖어 있었다.
걷는 내내
발밑으로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계속 따라 붙는다.
어디서 오는 물소리인지 궁금하다.
물소리를 따라 걷다가 계곡을 건넜다.
물소리만 따라 가다가는 성널오름으로 들어설듯 싶었다.
정상으로 다가갈수록
산색이 달라진다.
마음을 풀어제치고
가을을 맞이한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성널오름
성널처럼 줄지어선
바위가 이채롭다.
물오름
사라오름에서 먹구름이 몰려온다.
한라에 소낙비가 내리는가.
그렇다면 붉은 소낙비가 내리겠지.
논고악에도
간간히 붉은 낙엽비가 내린다.
논고악의 굼부리
돌이끼
축축한 바닥.
젖은 바람이 불면서
기괴한 인상까지 풍긴다.
굼부리 안의 또다른 풍경
부드러운 잔디밭
그리 크지 않은 산정화구안의 서로 다른 풍경은
마치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묘한 느낌.
등산로가 없기 때문에
내려갈 때도
알아서 숲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가까운 길을 두고
다시 한참을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아침에 오면서 걸었던 그 길이었는데
세 시간여만에 어느새 단풍이 짙어져 있었다.
우리의 시간은 이렇게 짧은 것이었음에 새삼 헛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