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기우는 오후
마음도
햇살 따라 기울어
꽃길을 찾아 나섰다.
제주시 명도암 마을의 칡오름.
칡이 많아 칡오름이라는데
칡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뜬금없는 촐밭이
큰오름과 족은오름 사이
고갯길을 덮고 있었다.
촐밭에 숨은 습지
맑은 물빛이
검게 보이는 것은
물통을 가득 채운
검은 올챙이들 때문이다.
큰오름 입구의 자연동굴 궤.
칡오름은
북쪽과 남쪽
큰오름 족은오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연동굴은
그 큰오름과 족은오름 사이에 있다.
칡오름 정상.
누군가 쉬어갔을 의자들은
오래도록 널부러져 있었는지
많이 삭아 있었다.
깃발도 많이 삭아 있었다.
이곳은 비와 바람만 다녀가는 곳인가 보다.
세상.
또다시 세상과 저만치 떨어져 섰다.
안세미오름
민오름, 절물오름, 거친오름, 견월악
바농오름, 지그리오름
기우는 햇살이
그 오름에 걸린다.
바메기오름, 우진제비
미처 다 가지 못한 햇살이
거기 솔잎에 걸린다.
제주시 봉개 칡오름에서
구좌읍이 한 눈에 보인다.
한 눈에 모든 것이 다 들어온다.
원당봉
함덕의 서우봉
햇살이 지평선에 걸렸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텐트를 가지고 왔으면
새벽달을 보고 갔을 것이다.
칡오름 정상 부근의 진지동굴
칡오름 진지동굴은
정상에서 바로 5m 정도 거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쟁을 위해 제주를 군사기지화 하려던
일본제국주의의 흔적은
아직도 오름 곳곳에 깊은 구덩이로 숨어있다.
정상에서 내려오니
다시 촐밭이다.
제선충 작업으로
오름으로 가는 길이 뭉개져 버려서
초행이면 길찾기에 신중을 기울여야 한다.
명도암 인근에 차를 세우고
농로를 따라 한참을 걷다가
대일농원 앞에서 올라가면
쉽게 오를 수 있지만
그것도 취향 나름이다.
시멘트 길이 싫으면
숲으로 들어가면 된다.
길이 없으면
정상으로 가는 길을 찾게된다.
길섶을 가득 메운 광대수염.
잎은 심장모양으로 마주나기 하고
꽃은 마주난 잎겨드랑이에 5-6개씩 층층이 달리는데
어째서 꽃말은 외로운 사랑인건지.
살아보니
세상은 그런거다.
세상과 나와의 거리는 외로운 거다.
세상과 나와의 거리라는 법칙이 그렇다.
그러나 한라.
그 길에 늘 한라가 있어 늘 안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