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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가을

by 산드륵 2017.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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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메밀꽃 밟고 넘어

오래된 무덤에 닿는

짧은 길.



그 짧은 간극 사이에 핀

제주의 꽃.



그 꽃들이

가을이 왔음을

알려준다.



걷기에 좋다.



꽃을 만나기 좋다.



나팔



달개비



여우팥



익모초



미국까마중



사광이아재비



동부



이질



애기나팔



박주가리



꽃들이

저마다 제 빛에 취해 있을 때

그들 곁에서

지구의 자전 방향을 따라

시간의 재단을 끝낸 거미.



거미의 노동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생겼다.



얼마나 사랑하였느냐.



얼마나 부드럽게 대했느냐



얼마나 품위있게

내 것이 아닌 것을 버리면서 살아왔느냐



스스로 던지는

그 질문 앞에서

홀로 미소지을 수 있다면

언젠가 내게 주어진 시간이 끝나더라도

이 여행이 마냥 외롭지만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을은

이 이야기를 하려고

제기랄, 다시 오는 것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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