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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구름 그리고 섬

하원 수로길

by 산드륵 2022.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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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영실 하원수로길

 

 

원래 이 길은 수행의 길이었다.

예로부터 한라산 영실은 상원上阮, 법정이오름 수행터는 중원中阮, 법화사는 하원下阮이라 불러왔다.

법화사에서 영실까지 수행자들이 걷던 길은 관리들의 편리한 등반로가 되기도 하였다.

그 수행의 길은 물을 따라 흘렀다.

그리고 이 길은 1950년대 이후에는 법화사 아랫마을 하원의 논에 물을 대는 수로로 변화했다.

현재의 서귀포시 하원 마을은 18세기 중후반에는 下阮으로 표기되다가 19세기 중후반부터 河阮으로 표기하기 시작하였다.

길은 그렇게 옛 의미를 잃어간다.

 

 

그곳에 가을이 왔다.

 

 

그리고 그 가을은 이제 떠난다고 한다.

 

 

찰나생

 

 

찰나멸

 

 

그리고 연이생緣而生 

 

 

찰나의 가을길은 짧다.

 

 

10월의 마지막 날은 한라 가을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11월이면 이들은 모두 떠나고 없다.

 

 

길의 위안은 이런 것

 

 

가을의 위안은 이런 것

 

 

가을은 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면서도 그 짧은 순간의 위로를 건넨다.

 

 

징검다리

 

 

징검다리를 건너면 가을의 선물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의 세계는 여기도 있다.

 

 

나무향

 

 

숲향

 

 

바람향

 

 

가을향

 

 

향기를 따라 걷다보면 언물

 

 

이 길이 '절로 가는 길'

 

 

영실 옥좌 존자암에서 법정이오름 수행굴까지 옛 어른들은 물길을 벗삼아 걸었다.

 

 

사랑하는 마음도 미워하는 마음도 버리라 했건만, 그래도 이 가을의 빛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다.

 

 

계곡을 건넌다.

고지천이다.

 

 

깊은 숲향기

 

 

깊은 숲의 물냄새

 

 

본능적으로 중원에 다가옴을 안다.

 

 

이 길을 건너 직진하면 법정이오름의 무오법정사항일투쟁지로 향하고, 왼편으로 난 길을 찾으면 한라산 둘레길을 걷게 된다.

 

 

산을 좋아하느냐

 

 

숲을 좋아하느냐

 

 

나무를 좋아하느냐

 

 

길을 좋아하느냐

 

 

그렇다면 한라의 부름을 받아야지.

 

 

한라의 품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한라가 불러야 한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

 

 

그곳에서는 철조망도 한라의 나무가 품어버린다.

 

 

무오법정사항일투쟁지로 나오는 하원수로길.

가을은 끝났다.

그 길의 아름다움은 이미 잊었고, 다만 내년에도 또다시 걸을 수 있기를 기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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