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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佛家思議

장흥 보림사

by 산드륵 2025.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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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 길을 아니 걸을 수 없다. 전라남도 장흥 가지산伽智山 보림寶林寺 가는 길. 보림사에서 가지산으로 오르는 길에는 차나무와 비자나무 숲의 향긋함이 깊은 숲에 숨어있다.

 

구산선문九山禪門 중에서 가장 먼저 개산開山한 가지산파迦智山派의 중심 사찰 보림사. 이 사찰은 신라 헌안왕의 권유로 가지산파의 법맥을 이어받은 체징體澄선사에 의하여 860년에 창건되었다. 보조선사창성탑비에는 보조체징普照體澄선사에 대하여 “달마는 당나라의 제1조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도의대사道儀大師를 제1조로, 염거선사廉居禪師를 제2조로, 우리 스님을 제3조로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부처님의 정법이 이 보림사에 이어졌다는 뜻인데, 사명을 보림사라고 한 것도 육조 혜능대사가 창건한 중국 보림사의 법맥을 이어받았음을 상징한다. 창건 이래로 이 보림사의 사세는 대단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한국전쟁 당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돠고, 천왕문, 사천왕, 외호문만 화재를 피하여 현재까지 남아있다.

 

 

선종대가람, 효종8년 1657년에 국가 수호사찰의 제액을 내렸고 영조2년 1726년에 시행한다고 새겼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외호문外護門’이라는 편액을 걸어놓았다. 천장 위의 용이 가람을 외호하는 문이라는 뜻이다.

 

 

장흥 보림사 사천문

 

 

사천문의 장흥보림사목조사천왕상은 국가유산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중종10년 1515년에 조성되었으며 이후 2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오래된 목조 사천왕으로, 높이는 3.7m에 달한다. 사천왕의 몸속에는 『월인석보』『금강경삼가해』 등 227종 345권의 불교관련 서적이 모셔져 있었다.

 

 

사천왕은 갑옷을 입고 위험이 충만한 무인상을 하고 동서남북 사천국을 다스린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초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 입구에 사천왕문을 세워 모시고 있다. 동방지국천왕, 북방다문천왕, 남방증장천왕, 서방광목천왕이 위치한다. 이 보림사 사천왕들은 인자하고 부드러운 미소로도 세상을 지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 하다.

 

 

보림사 대적광전.

 

이곳 보림사에는 대적광전과 대웅보전 등 2개의 주불전이 있다. 그중에서도 이 대적광전 앞에 석탑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을 보림사 주불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물론 2개의 주불전은 그 사찰이 세력이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적광전과 대웅보전 모두 주불전의 역할을 했다고도 할 수 있다.

 

 

보림사 대적광전의 철조비로자나불. 원래 소실된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대적광전이 지어지면서 이곳으로 옮겨 봉안하였다.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를 감싸고 있는 지권인을 하고 있다. 진리의 빛 비로자나의 수인이다.

 

 

보림사철조비로자나불은 국가유산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대좌와 광배는 없어지고 부처님만 남아있다. 불상의 왼팔 뒷면에는 신라 헌안왕 2년 858년 무주장사 부관이었던 김수종이 시주하여 불상을 조성했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는데, 후대에 진흙으로 보수하였다. 이 작품은 조성연대가 확실하여 비로자나불상의 계보를 확인하는데 중요한 가치가 인정되고 있다.

 

 

연꽃과 구름과 나비, 그리고 맑은 향기

 

 

보림사 남북삼층석탑 및 석등.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으로 국가유산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이 탑은 1932년에 사리장치를 훔치려다 넘어트린 것을 그 다음해에 복원할 때 1층 탑신부 사리구멍에서 사리와 함께 조성 내용이 기록된 탑지가 나와 신라 경문왕 10년 870년에 조성되었음이 확인되었다.

 

 

탑지에 의하면 보림사 남북삼층석탑은 초층 탑신에 사리 7과를 봉안하고 신라 경문왕10년 870년에 조성하였다. 탑의 높이는 약 5.4m이다. 2단으로 쌓은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렸다. 상륜부 보륜은 남쪽 탑에 4개, 북쪽 탑에 5개가 남아 있다.

 

 

탑과 탑 사이에는 부처님에게 빛을 공양하는 석등이 세워져 있다. 석등은 영기창靈氣窓을 새긴 사각 바닥돌 위에 받침돌을 얹고 그 위에 팔각 연꽃무늬를 새기고 기둥을 세운 후 다시 팔각 연꽃무늬로 마무리하고 그 위에 받침돌을 올린후 팔각 화사석에 네 개의 창문을 내고 지붕돌을 얹었다. 별빛보다 고운 빛을 부처님에게 공양하기 위한 아름다운 장치가 이 석등이다.

 

 

보림사 성보박물관. 문이 잠겨 있어서 확인할 수 없었다. 기회가 되면 다시 찾아보고 싶다. 아마 이곳에도 차의 향이 가득 배어 있지 않을까 한다.

 

 

삼성각

 

 

보림사 대웅보전. 국보로 지정되어 있었던 보림사 대웅전이 소실되자 1984년 복원하여 대웅보전이라 명명하였다. 당일에는 마침 49재가 있어서 오래 기다려 참배했다.

 

 

보림사 대웅보전은 밖에서 볼 때는 2층 건축물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외관과는 달리 1층 형식으로 되어 있다. 층이 거듭되어 중층이라고도 불리는 양식이다. 한국건축에서 중층 건물은 제한적으로 축조되었으며 그 위상이 남다르다. 궁궐에도 근정전, 인정전과 같은 정전에만 중층양식을 볼 수 있으며, 사찰에서도 화엄사 각황전, 금산사 미륵 등에서 유사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대웅보전의 삼존불과 협시보살. 석가모니부처님을 본존불로 봉안하고 정광불, 미륵불을 모셨다. 각부처님마다 연꽃을 든 관세음보살, 사자와 함께 하는 문수보살, 코끼리를 타고 온 보현보살, 석장을 든 지장보살 등이 협시하고 있다.

 

 

시아본사석가모니불,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이 좌우협시하였다.

 

 

미타전

 

 

장흥 전의상암지 석불입상

 

이 석불입상은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를 맞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미타부처님으로 추정한다. 원래 전라남도 장흥읍 제암산 중턱 의상암 절터에 있던 것이다. 1994년에 보림사로 이운되었다. 몸 뒤의 광배와 목 부분의 파손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 민머리위에 상투모양이 머리묶음이 높게 표현되었고,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가슴 위까지 U자형의 주름이 드리워졌다.원만한 얼굴, 높은 머리묶음, 상체의 옷주름 등으로 보아 9세기경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미타여래의 붉은 입술이 인상적이다.

 

 

조사전

 

 

명부전

 

 

지붕 용머리에는 양쪽으로 내달리고자 하는 용과 그 가운데 사자를 모셔놓았다. 명부의 중생들이 지혜의 길로 접어들기를 기원하고 있는 듯하다.

 

 

보림사 낙엽. 보림사 낙엽에서는 차향이 난다.

 

 

보조선사창성탑비.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보조체징선사께서 입적한 4년 후에 세워졌다. 신라 헌강왕 10년 884년의 일이다.

 

 

이 탑비는 특히 차에 관한 우리나라 금석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이름이 나 있다. 신라 헌안왕이 보조체징선사에게 '차와 약을 보냈다.'라는 기록이 적혀 있는 것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고려시대 전국 19개 다소 중에서 13개 다소가 장흥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천년고찰 보림사를 중심으로 차 문화가 전승 발전되어 장흥 보림사 전차를 있게 했음을 알 수 있다. 초의선사는 보림사 차로 보림백모차를 즐기기도 했다. 장흥 전통발효차 청태전은 2018년 국가중요농업유산이라고 한다. 현재 보림사 등산로에는 보림백모길과 보림차약길 등의 티로드가 개설되어 있다.

 

 

"보림사에서는 '차나 한 잔 하게'"라고 말하는 듯하다.

 

 

보조선사영성탑

 

 

보물 제157호

 

 

사천왕상

 

 

구름 밖으로 걸어나올 듯하다.

 

 

수인만 남은 비로자나불. 가만가만 살펴보는데 마침 휴대전화에 문자가 뜬다. 무안제주항공 참사 소식이 전해진다. 매캐한 냄새에 섞여 몰려온 그 고통에 함께 아파하지 않을 수 없다. 무안의 그 아픔과 고통을 어찌 다 헤아리랴. 그저 두 손 모아 아픔을 억누를 뿐이다.

 

 

가지산 보림사사적비

 

 

삼한불교선문종찰가지산보림사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나무 하나를 가운데 두고 가지산이 둘러싼 보림사

 

 

이곳은 물맛도 좋다.

 

 

보림약수는 한국의 10대 명수로 물맛이 좋고 위장병, 피부병 등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곳 차가 향기로운 것도 모두 이 물맛 때문으로 여겨진다.

 

 

보림사에서 나와 잠깐 동쪽 숲으로 걸으면 보림사 부도탑전을 만날 수 있다. 보림사는 통일신라시대 선종 9산 중 가장 먼저 개산한 가지산파의 중심사찰로 수많은 고승대덕들이 거쳐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이다. 보림사 동쪽 숲의 부도전에는 그 사실을 보여주려고나 하는듯 여러 부도들이 산기슭 여기저기에 모여있다.

 

 

그중에서도 부도전의 보림사 '동 부도'는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안내문에는 '동 부도'를 '동 승탑'이라고 기록해 놓았는데 원래의 불교 용어인 '부도'를 이제는 찾아올 때가 되었다. 불교의 고유용어를 보통명사로 바꾸어버린 그 업보를 누군가는 꼭 받아야 할 것이다. 이 보림사 부도는 탑신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기단을 두르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얹고 각 부분을 8각으로 깎아 조성하였다. 잘 정돈된 구조가 돋보이며 머리장식이 온전하게 남아있다.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졌으면서도 고려전기의 특징을 보여주는 부도탑이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탑신의 윗부분이 높게 이루어진 반면 기단의 가운데받침돌이 작고 낮아 불안정해 보인다. 구태여 안정감을 추구하려 하지 않은 그 기백이 오히려 위로가 된다. 인생은 그렇게 불안정하다.

 

 

고운 햇살 속에서 서성인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곳의 부도들은 대부분 그 형태가 유사하다. 탑신의 윗부분이 높고 아랫부분은 그 받침돌이 작고 낮다. 안정감을 배제해버린 그 모습에서 위태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뒷모습이 어른거린다. 무안제주항공 참사의 아픔을 함께 하며 극락왕생을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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